기획/전교조 합법화 되기까지.. 당진지회 걸어온 길
‘참교육’ 기치아래
고난의 10년 세월 견뎌와
89년 5월 교사 30여명 지회결성
당진천주교회에서 결의대회
해직·파면 등 가시밭길 연속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키만큼이나 10년이라는 세월은 세상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단지 인간의 의지뿐.
전교조 당진지회(지회장 강대석)는 이제 명실공히 합법단체로서 다가오는 교육개혁의 일 주체로 자신의 위상을 굳게 다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합법화라는 결과를 얻기까지는 10년간의 모진 고난과 시련의 세월을 겪어야 했다. 많은 교사들이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의 고통과 사랑하는 제자들과 헤어지는 아픔을 견뎌야 했다. 전교조 당진지회 또한 참교육을 향한 수많은 교사들의 역경과 역사를 함께 했다.
87년 6.29선언 이후 전국교사협의회를 구성한 교사들은 협의회로는 참교육 실현과 교사의 권익을 대변할 수 없다는 인식아래 89년 노조로의 변화를 꾀한다.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탄생한 단체가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이다.
당진에서는 이인호 당시 당진상고 교사를 지회장으로 이용우 합덕중 교사, 박경희 당진여고 교사 등 30여명의 교사가 89년 5월 11일 당진천주교회 교육회관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본격적인 노조결성을 선포한다. 이날 대회에 참석한 교사들은 학교측의 동행퇴근, 신분확인 등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다.
충남지부 결성식 때에는 연행된 교사들에 대해 학교와 집으로 신원을 파악하고 교장과 부모들이 직접 인계하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더욱이 전교조 결성과 조합원 명단 공개 이후부터는 교육당국에서 직접 개별면담을 통해 탈퇴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학교현장에서는 다른 교사와 접촉을 금하고 심지어 따돌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조합원들이 직·간접적인 탄압과 타의에 의해 탈퇴했다. 끝까지 남아있던 조합원들은 89년 7월 1일 발표된 문교부의 전원 파면·해임방침에 따라 정든 교단을 떠나야 했다.
90년에는 현직교사를 중심으로 해직교사 원상복직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각 학교 교사와 지역인사를 중심으로 해직교사의 복직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이때 현직에 있는 많은 교사들이 동참해주어 조합원들에게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고 전교조 교사들은 회고한다.
93년 10월 15일 정해숙 당시 전교조 위원장은 정부의 탈퇴 조건부 복직 방침을 수용하겠다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탈퇴각서 한장 쓰지 않으려고 그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던 조합원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으나 밖에서의 활동보다도 교육현장에서의 활동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다시 교단에 섰다.
해직교사들이 다시 교단에 돌아온 당진지회는 다시 활력을 되찾고 교육개혁을 위한 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복직과정에서도 타 시·군으로 발령해서 예전의 학교로는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타 시·군에서 활동하던 교사들을 맞은 당진지회는 이후 합법화 운동과 교과전담제, 19시간 준수 등을 둘러싸고 청원서명운동을 전개했다.
복직 이후에는 학교측의 태도도 한결 부드러워졌으며 98년 2월 6일 노사정위원회의 합법화 합의이후에는 축제분위기였다. 학교에서도 대화상대로 인정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98년 강대석 지회장의 취임 이후에는 합법화를 대비해서 일반교사들의 참여를 넓혀가는 방향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합법화를 맞는 현 시점에서 우려의 목소리 또한 없지 않다. 그러나 전교조 당진지회에서는 교사들의 권익만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 교육개혁의 일 주체로 위상을 분명히 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