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부쩍 가슴을 파고드는 요즘이다. 농민들의 분노의 목소리가 연일 높아지고 있고, 대규모 강경시위도 벌어지고 있다. 한미FTA 반대를 요구하는 농민들의 깃발이 드높고, 그 깃발 아래선 농민들의 한숨이 땅을 꺼뜨릴 듯 무겁다. 누군들 경찰과 몸을 부대끼고 애써 수확한 벼들을 불태우고 싶을까? 그만큼 농민들의 마음이 절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미FTA 협상 4차 본협상이 지난 10월27일 마무리되었다. 정부기관의 발표에 의하면 농산물분야에서 일차적으로 통합협정문을 작성하고 농산물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도입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한미 양측의 관심사와 의도를 파악한 것에 불과하고, 5차협상부터 쌀과 쇠고기 등 민감품목에 대한 개방여부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농산물 분야에 대한 실질적인 협상이 진행되는 만큼 농민들이 여기에 대해 걱정과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체결된 국내외의 자유무역협정에서 농산물 분야는 언제나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한미 FTA체결에 따라 쌀을 제외하더라도 주요 농산물 25개 품목에서 관세가 즉시 철폐되면 1조8000억원 가량의 생산 감소가 뒤따를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수치가 매우 보수적으로 평가됐다며 8조8000억원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지난해 농업부문 GDP 추정액이 약 20조원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피해액이 아닐 수 없다. 산술적으로만 따져도 우리의 농업생산이 40% 이상 감소한다는 뜻이고, 이것은 결국 전체 농업인구 중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농민들이 일거리를 잃고 농촌을 떠나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는 여기서 스위스의 농업정책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미FTA 협상 개시 하루 전인 지난 2월1일 스위스는 미국과의 FTA를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스위스가 미국과의 FTA 협상을 중단한 이유의 99%는 농업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다. 스위스는 양국간의 무역량이 최고 100%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뒤로 하고 인구의 4%를 차지하는 농민들을 선택한 것이다. 세계 제1의 농산물수출국인 미국과의 대결에서 스위스 농업이 개방 즉시 무너져내릴 것은 뻔한 이치였다. 결국 스위스는 식량안보와 자국의 농업보호를 위해 FTA를 중단하고, 대신에 공산품 분야를 주요 품목으로 한 무역-투자 협력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스위스의 사례를 볼 때 우리는 농업을 단순히 산업적인 가치만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FTA를 통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자동차와 반도체 및 통신 분야에서 발생할 큰 이득에 비하면 농산물 분야에서 발생할 피해는 감수해도 된다는 식의 표면적인 경제논리가 팽배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농업과 농민들이 우리들 모두가 소중하게 지켜내야 할 가치임을 생각한다면, 지금 농민들의 분노와 우려의 목소리는 어쩌면 우리들이 표출해야할 분노와 우려를 대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외롭지 않아야 할 싸움을 외롭게 만든 책임의 대가를 훗날 우리의 아이들이 대신 치러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미 한칠레 FTA 협정 체결 당시 정부는 농업분야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공산품 분야의 경쟁력으로 손해를 상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칠레 FTA로 이익을 남긴 기업과 회사가 그 이익금의 일부를 농민과 농업을 위해 기부했다거나 투자했다는 소식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다. 따라서 다른 분야에서 발생한 이익을 농업분야에 환수하는 효과적인 정부정책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미FTA가 우리의 농민들에게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와 골을 남겨서는 안 될 것이다. 농업은 등안시해도 되는 산업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보호해야 할 제1의 소중한 민족적 산업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