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의 신(神)중에 아누비스는 자칼의 머리를 가진 죽은 자의 신(神)으로서 미이라를 만드는 후원자이자 분묘의 수호자이기도 했다. 사자(死者)의 서(書)에 의하면 그는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질해서 무게를 밝혀낸다. 아누비스는 자신의 저울 한 쪽에 죽은 자의 심장을 얹고 반대편 저울엔 깃털 하나를 올려놓는다.
죽은 사람의 심장의 무게가 깃털보다 가벼워야 무사히 심판을 통과하게 된다. 만약 깃털보다 무거울 경우 죽은 자의 영혼은 갈기갈기 찢겨 먹힌다.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2천년 전의 고대문서 가운데 계시록들이 있다. 거기에는 천당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천사들이 사람의 영혼을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무게가 많이 나가면 천당으로, 너무 가벼우면 지옥으로 보낸다.
두 가지 사례 모두 생전에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는지,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는지를 양심과 영혼의 무게로 재고 그에 따라 심판하고 있다. 아누비스의 저울은 좋은 일, 나쁜 일을 따져 죄가 얼마나 더 많은지에, 천사들의 저울은 좋은 일과 나쁜 일 중 좋은 일을 얼마나 더 많이 했는지에 대한 척도가 다를 뿐이다
과연 죽을 때 내 양심의 무게는 어떻게 될까? 아누비스의 저울로 재어보면 과연 통과될 수 있을까? 천사들의 저울로 재면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그렇다면 한 조직의 양심 무게는 무엇으로 잴 수 있을까? ‘투명성’이 조직의 양심을 재는 척도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공공, 정치, 경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여 ‘사회투명성협약’을 맺고 이를 범국가적으로 필요성을 인식해 부패문제를 개선하고 사회투명성을 높이기 위하여 각 부문, 분야, 지역별로 과제들을 선정하고 과제들을 공동의 노력으로 풀어나가면서 투명성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투명사회협약의 의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한 번의 이벤트로 인식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특히 정치 분야는 약속한 투명사회협약실천특위를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한 국가의 투명성, 다시 말하면 국가의 부패지수를 저울로 재면 우리나라는 세계 163개국 가운데 42위 안팎에 머물러 있다. 국민총생산 기준 경제력은 세계 11위라고 하는데 부패지수는 42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은 육체의 무게에 비해 영혼의 무게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사회투명성 개선은 한두 곳의 반부패기구들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공기관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기업, 시민사회단체까지 사회 각 분야의 노력이 필요하다.
투명사회협약을 체결한 분야, 부문, 지역들은 약속한 과제들을 제대로 이행하고 투명사회협약을 체결하지 않은 곳들은 투명사회협약을 추진하여 투명성 개선의 의지를 높여야 할 것이다. 투명사회협약을 통해 약속한 과제들이 제대로 이행된다면 부패인식지수는 자동적으로 높아져 갈 것이다.
최근 들어 다시 육체의 무게에 영혼의 무게를 맞추기 위해 각계가 발 벗고 나섰다. 박수를 보낸다. 이번에는 구호가 아니라 착실하게 실천하는 협약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이 협약의 성공은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양심 무게에 달려있다.
부패와 불투명성이 우리 사회의 경쟁력과 지속가능한 발전에 저해요인이 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각자의 양심이 죄의 무게를 재는 아누비스의 저울에는 가벼워서 통과되고, 선행의 무게를 재는 천사의 저울에는 무거워서 통과되도록 하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성공을 거둘 때 우리 사회는 정의와 공의가 득세하는 낙원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