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덕여고 교사
중국의 역사왜곡에 정면도전한 소설
역사는 윤회를 거듭하는가? 아니면 눈부신 문명을 이룩했다 할지라도 인간의 역사는 결국 그 틀에 갇혀 있는 것인가?
역사상 가장 빛나는 전투로 기록될 ‘살수대첩’은 역사책에서 고작 몇 줄로 지나가고 있다. 이 대첩을 둘러싼 주변국과 권력자들의 이해관계가 복잡미묘하게 얽혀 있는 이 이야기는 작가의 말처럼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생동감을 통하여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처럼 역사를 소재로 다룬 소설은 역사의 이해를 돕는 데 큰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작가의 상상력이나 허구를 실제의 역사로 착각하게 하는 함정을 파놓고 있다. 이는 비단 ‘살수’에서만의 문제는 아니지다. 다른 역사소설이나 역사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기록과 검증이 근세에 비해 비교적 어려운 시기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그러할지도 모른다.
다소 장황하고 허황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여러 지적에도 불구하고 김진명의 소설 ‘살수’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국가의 운영을 책임진 정치지도자들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준다. 더구나 독도 문제니 동북공정이니 하는 일련의 국가적 난제들 앞에서 더욱 그렇다. 중국의 역사왜곡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소설 ‘살수’는 우리가 대충 스쳐 지났던 우리의 역사 인식을 질타하며 그들에 맞서 빼앗긴 역사를 어떻게 되살려낼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 다시 서게 한다.
수나라의 양광이 고구려 정벌에 나선 이유는 다소 어이없어 보인다. ‘시경’에 ‘한후’라는 민족을 동제로 여기고 받들었다는 표현에 자극받은 것이다. 거기서 동제를 받드는 중국은 서제였으며, 옛조선은 ‘동제’였던 것이다. 자신의 나라가 작은 나라, 즉 고구려의 전신인 옛조선을 받들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 동제의 후신들을 말살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의 동북공정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중국은 단지 자존심 하나만으로 왜곡을 진행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령 통일 이후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력이나 그것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이득까지도 선점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는 수나라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그들에게 자존심은 결국 지배력과 지배의 이익이 수반되는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 보자. ‘역사는 윤회하는가?’하는 물음 앞에 다시 선 우리를 발견하게 되리라. 민족의 명운은 내부적 문제와 더불어 주변국들과의 역학관계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상황이 또 그러했고, 조선시대의 상황 역시 그러했으며, 근세 식민지 시대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이 결국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수를 통해 을지문덕이 우리 후세들에게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단지 용맹과 지략에 뛰어났다는 개인의 자랑은 아닐 터이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며, 정치 지도자들이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용맹과 지략은 자기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쓰일 때 가치가 돋보이는 법이다. 당리당략과 개인의 권력욕을 위해 모든 재주와 식견이 통째로 왜곡되는 우리의 정치 현실 속에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 통큰 역사의식을 갖고 정치하라는 준엄한 선조들의 목소리, 민초들의 염원이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