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상록문화제 학생글짓기대회 고등부 산문부문 금상 수상작
내가 만들어가는 내 길 - 주미지 신평고 1학년
“자, 어서 가자!”
지난 추석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댁이 있는 대구로 갈 채비를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추석연휴의 교통상황은 최악이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차가 있었나’할 정도로 많은 차가 도로 위에서 죽 줄을 서고 있었다. 평소에 5시간이면 갔을 길을 출발한 지 3시간이나 지났는데도 반도 오지 못했다. 운전하시던 아버지를 비롯하여 우리 가족은 지칠대로 지쳤다.
“엄마, 대체 언제쯤 도착해요?”
“글세 잘 모르겠구나. 차가 너무 밀려서.”
도로에 고정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차들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 몇시간째 운전석에서 계속 운전대를 붙잡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씀하셨다.
“그럼 우리 이번에는 다른 길로 가볼까? 거긴 안 밀릴 것 같은데.”
“정말요? 그런 길이 있어요?”
“응, 보니까 다른 길이 있는 것 같애.”
“와! 그럼 그 길로 가요! 살았다!”
아버지께서는 옆으로 방향을 틀어서 복잡하던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셨다. 새로 접어든 길은 확실히 차가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가도 가도 ‘대구’라는 표지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여기 대구 가는 길 맞아요?”
“그러게 말이다. 아무래도 길을 잃어 버린 것 같구나.”
“네? 길을 잃어요?”
눈 앞이 캄캄해졌다. 안그래도 대구까지 가는데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데 길까지 잃다니..... 정말 엎친데 덮친격이었다. 결국 우리는 느낌에 의지한 채 계속 앞으로 직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해가 져서 캄캄한 밤길을 혼자 달리는 것은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헤드라이트 하나에 의지한 채 직진만 하던 우리 앞에 휴게소가 나타났다. 우리는 휴게소에 내려 우동으로 배를 채우고 직원에게 대구가는 길을 물어 다시 힘차게 차를 출발시켰다. 한숨 자고나니 어느 새 우리 차는 동대구 톨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빠, 다 온거에요?”
“그래, 아까 빠지길 잘했다. 덕분에 빨리 도착했거든.”
“그래도 아까 길 잃었었잖아요. 저 그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세요?”
“어쨌든 더 빨리 왔잖니. 전화위복이라더니. 하하.”
동대구 시내에 들어서자 언제 밀렸냐는 듯이 도로가 뻥 뚫렸다. 몇 대의 차와 함께 빠르게 달려 우리는 할아버지 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점심을 먹고 4시에 출발했으니 꼬박 11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모두 피곤한 몸을 이끌며 도착하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 이불을 덮으며 귀향길을 떠올려봤다. 생각해보니 우리의 귀향길이 인생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살다보면 추석의 고향 가는 길처럼 앞뒤가 꽉 막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정말 짜증나고 답답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그런 때. 또 잘 해 보려다가 길을 잃은 우리처럼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때도 있고 새벽의 대구 시내 도로처럼 앞이 뻥뻥 뚫려 앞으로 빠르게 달려가는 차들처럼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도 있다. 아무도 언제 막히고 언제 길을 잃고 언제 도로가 뻥뻥 뚫릴지 모른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모든 길에는 끝이 있다는 것이다. 11시간이 걸리든 12시간이 걸리든 우리의 길에는 항상 끝이 있다. 그리고 그 끝까지 가는 길을 만드는 건 바로 ‘나’다. 이대로 죽 나갈건지, 우회전을 해 다른 길을 찾아 볼 건지 휴게소에 들러 잠깐 쉬다 갈 것 인지 결정하는 것은 모두 내 몫이다. 그 편리하다던 네비게이션도 조수석에 앉은 가족이나 친구도 내 운전을 대신 해 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그저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자동차의 운전대를 뒤고 끝을 향해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벌써 우리는 출발선을 떠난 모두 각자의 차의 운전자가 되어 이 굴곡 많고 험난한 길을 달려가고 있다. 영원히 어린애일 것만 같던 나도 벌써 17년을 내 길 위에서 보냈다. 난 뻥뻥 뚫리던 고속도로도 만나 봤고 험난한 비포장도로도 달려 봤고 길을 잃어보기도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라는 톨게이트를 거쳤고 또 앞을 향해 여전히 달려가는 중이다. 17년동안 이렇게 수많은 길을 달려봤다. 아직 가야할 길이 먼데 또 어떤 길을 달리게 될지 두렵기도 그리고 궁금하기도 하다. 항상 내 길이 밀리지 않는 고속도로일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차의 운전대를 잡은 운전자로서 내 길의 끝이 내가 도달하고 싶어하던 ‘그 곳’일 것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결국 대구 할아버지 댁에 도착했던 것처럼. 그 끝을 위해 난 오늘도 힘차게 액셀을 밟는다. 반드시 이 길의 끝에서 나는 환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제31회 상록문화제 학생글짓기대회 초등부 산문부문 금상 수상작
우리 교실 - 곽 지 영 서정초 3학년, 신평면 거산리
며칠전부터 3학년 복도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12일에 교감선생님, 교장선생님께서 모든 교실을 둘러보며 평가를 하신다고 하셔 엄마들이 환경정리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한가지 불만이 있다. 우리교실은 옛날에 체육실이어서 게시판이 다른 교실의 2배나 된다. 그래서 게시판을 꾸미는데 다른 교실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게다가 우리반 엄마들은 바쁘셔서 우리 엄마, 아림이네 아줌마께서 가끔씩 오셔서 겨우겨우 완성된 교실 게시판은 다른 반과는 다르게 뭔가 허전하고 어디 하나가 다른 반과는 확실히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다 사서 꾸민 2반보다 더 정이 들어 좋다.
“엄마, 아림이네 아줌마, 감사합니다.”
그래도 우리반만이 가질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이 뭐냐하면 바로 ‘정’이다. 다른 반과는 다르게 하나밖에 없는 뻑뻑한 문을 열고 들어오면 우리반이 반겨주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계속 우리반 문을 열고 들어오다 보면 ‘이 반은 다른반과는 다르지만, 아주 좋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좋게 만들어도 우리반이 시원찮은 이유는 바로 말썽쟁이 김인겸, 김승도 등 여러 아이들이 뛰어 다니면서 여러 가지 작품들을 쓰러뜨리고, 밟고, 게시판을 마구 헤집어 놓아 선생님께 꾸중을 들은 다음, 다시 꾸밀 때 말썽쟁이 남자아이들이라서, 실력이 그다지 나은 것이 아니라 하기 전과 후나 똑같다. 그래서 나와 다영이처럼 미술을 잘 하는 아이들이 도와줘야 완벽하게 된다.
비록 다른 반과는 다르고 말썽쟁이 아이들이 망가뜨려 놓아 헝클어진 게시판이 있어도 우리교실은 그 어떤 교실보다 좋은 교실이다.
제31회 상록문화제 주부백일장 대상 수상작
시장(부제:생애 첫 아르바이트) - 허 령 탑동초등학교 학부모, 당진읍 채운리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친구네 집에서 놀고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시골에서 대파를 길러 시장에 내어 파셨던 것 같다. 그때쯤은 김장철이어서 배추며 대파가 불티나게 팔리는 즈음이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귀가 솔깃한 제안을 하셨다. 시장에 자리를 펴고 파를 팔아보라는 것이었다. 잘 팔면 500원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의 500원인만큼 그 값어치는 초등학생인 우리들에게 큰돈이었던 셈이다. 나는 주저 없이 하겠다고 나섰으나, 친구는 창피하다며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런 친구를 잘 달래서 함께 시장에 나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시장 한복판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파 사세요, 한단에 200원 싱싱합니다!”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조금 지나니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목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시장 안의 사람들은 우리 쪽으로 몰려들었다. 어린 아이들이 추운 겨울에 파를 팔고 있으니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아주머니들이 혀를 끌끌 차시며 불쌍하다고 하셨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신나게 장사를 하였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친구의 아버지께서 가져오신 파를 거의 다 팔았을 쯤 우리의 손에는 거금 500원이 들려 있었다.
이 돈은 왠지 부모님이 용돈으로 주시던 돈과는 다르게 너무 소중하고 값지게 느껴졌다. 나는 그 일을 이틀을 더 했고 나의 목적자금 1500원이 만들어졌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앞의 신발가게에서 봐두었던 신발이 있었는데 가격이 1700원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나의 어머니는 파출부를 다니고 계셨다. 요즘 말로는 가정관리사란 그럴듯한 말이 있지만 그때 나는 어린 마음에 어머니가 부끄럽기도 하였다. 적은 월급으로 우리 5남매를 돌보셨던 어머니는 당신을 위해 어떤 사소한 사치도 할 수 없는 분이셨다. 심지어 신발 하나도 바닥이 닳도록 신고 다니셨으니까.
그런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은 선물은 바로 안쪽에 솜이 복실복실한 따뜻해 보이는 털신이었던 것이다. 신발가게 아주머니는 유심히 나를 보아오신 덕에 흔쾌히 200원을 깎아 주셨고 나의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통해 받은 값진 1500원짜리 털신을 들고 어머니께 자랑스럽게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선물로 드렸다. 어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더니 이내 눈시울을 붉히시며 나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어 주셨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 가슴 속에 차올랐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어머니의 연세도 칠순이 되셨다. 나 또한 결혼을 하여 두 남매를 둔 부모가 되었다. 어머니는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잊지 않고 털신자랑을 하신다. 그때마다 무슨 큰 효도를 한 것도 아닌데 기억하시냐며 타박을 하지만 어머니께 그 선물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이신가보다.
큰 생각 없이 시작한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나의 유년시절을 멋지게 장식해준 일대의 사건이었던 셈이다.
상록문화제 수상자 명단
■학생서예잔치 △대상:이상혁(신평중3) △금상:인호연(원당초4), 용주현(탑동초6), 박도연(합덕초5), 김인수(천의초5), 이다영(순성초6), 윤대열(송악초1), 김초원(송악초3), 강현석(서정초5), 이규재(서정초5), 정소미(계성초2) △은상:최민식(계성초3), 김병찬(계성초5), 김예당(계성초6), 김성화(원당초1), 김우영(원당초5), 이지원(당진초5), 이지원(당진초5), 이예린(당진초5), 김지수(탑동초3), 이다인(탑동초4), 박태연(합덕초4), 조지연(합덕초6), 이정재(순성초5), 윤주일(송악초2), 조현지(송악초6), 김마리아(서정초2), 박수진(순성중1), 육재균(당진초1), 함성주(탑동초2) △동상:이혁인(계성초5), 김성화(원당초1), 이수빈(원당초3), 송혜지(원당초4), 성열이(원당초5), 김효정(당진초3), 고현경(당진초3), 김현아(당진초5), 손한비(당진초5), 김태수(탑동초5), 한병주(천의초4), 이지수(순성초5), 안가비(순성초6), 김진솔(순성초6), 이혜진(순성초6) 이강혁(한정초2), 조정현(한정초2), 배보경(한정초2), 김예리(한정초3), 박주영(한정초4), 정원기(한정초6), 차승준(기지초2), 차혜인(기지초4), 차혜지(기지초6), 정휘윤(송악초5), 이연재(송산초4), 이미림(송산초6), 박소현(순성중2), 홍형미(남산초6)
■학생미술잔치 ▲초등부문 △대상:김민주(원당초3), 음지현(당진초5) △최우수상:황현지(기지초1), 임세림(원당초2), 조하영(탑동초3), 박동민(원당초4), 박지선(당진초5), 용주현(탑동초6) 쪾판화:이희정(송산초5) 쪾수묵:정은비(기지초6) ▲중등부문 △대상:정인혜(순성중3) △최우수상 쪾수채화:김민영(당진중3) 쪾판화:김주희(고대중3) 쪾포스터:양하은(당진중2) 쪾만화:정근식(서야중3) ▲고등부문 △최우수상 쪾수채화:손 솔(호서고2)
■학생글짓기 ▲초등산문 △금상:최은비(순성초6), 곽지영(서정초3) △은상:정예슬(계성초4), 채주영(남산초2) △동상:박정민(원당초6) 최지수(송산초4), 김한별(합덕초3), 박동인(기지초3) ▲초등운문 △금상:최윤범(정미초2), 박인희(당진초5) △은상:이영주(합덕초3), 이진영(신촌초4) △동상:김예린(전대초3), 이상민(면천초1), 이 봄(탑동초5), 김소지(고산초6) ▲중등산문 △금상:주미지(신평고1) △은상:이재연(합덕중3) △동상:최하니(신평중3) ▲중등운문 △금상:김아름(서야중2) △은상:지 혜(호서고3) △동상:이슬희(합덕산업고2)
■주부백일장 ▲산문 △대상:허 령(탑동초 학부모) △금상:신득순(원당초 학부모) △은상:이미애(고대초 학부모), 임경자(서정초 학부모) △동상:김향욱(계성초 학부모), 박영미(순성초 학부모) ▲운문 △은상:박은미(상록초 학부모) △동상:예영미(삼봉초 학부모)
■시조경창대회 △금:김광흥(예산면 고덕면) △은:김이기(대호지면 조금리) △동:방선흥(송악면 가학리) △수:박종대(당진읍 구룡리), 유영복(석문면 교로리), 차풍태(대호지면 사성리), 박상옥(신평면 신송리)
■민요경창대회 △대상:원금희(석문면 삼봉리)
■가족장기자랑 △최우수가족상:정수만 △우수가족상:손운숙 △인기가족상:장혜란 △모범가족:이호천, 오동주, 이재훈, 이정란
■상록민요경창대회 △대상:심상희(당진읍 채운리)
■외국인장기자랑 △대상:란 △금상:멜 △은상:후안티풍요 △동상:마이티당, 레티옷 △장려상:알렉스, 마리오, 다릴, 도티레꿴, 웬티하
■군민노래자랑 △최우수상:이태영 ·이건희·윤태영(당진읍 대덕리) △우수상:박홍순(당진읍 읍내리) △가창상:박서준(송산면 유곡리) △인기상:김호영(당진읍 읍내리) △장려상:허영숙(고대면 옥현리), 마옥선(당진읍 원당리), 강경숙(당진읍 채운리), 최인환(대호지면 조금리), 이혜자(당진읍 수청리), 한순옥(송산면 유곡리), 김향순(정미면 천의리), 남상칠(대호지면 도이리), 오미자(우강면 송산리), 곽영호(면천면 원동리), 조병선(석문면 교로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