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님의 장편소설 ‘바리데기’를 친구에게 선물로 받았다.
바쁜 일상을 핑계로 책상 한구석에 얼마나 있었는지... 몇 주 지난 금요일, 퇴근시간 전 책상정리 중 말갛게 쳐다보는 겉표지의 소녀와 눈이 마주치며 집어 들었다.
어린 시절 자라면서 어디선가 한번쯤 들음직한 구전 설화 바리데기를 떠올리며 느긋한 마음으로 첫 장을 넘겼다.
주인공 바리가 유년시절 가족과 살던 청진의 바닷가 언덕바지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지며 서두가 시작된다. 아버지의 끊임없는 아들 욕심과 내리 여섯 딸을 낳았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힌 모정은 막내마저 딸이라는 이유로 낳자마자 버림을 강행한다. 시대상의 탓이려니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남아 선호사상에 미간을 찌푸렸으나 내용상 필요한 복선이리라 여기며 주인공의 질곡된 삶의 편린이라 생각한다. 흰둥이의 재치와 할머니의 자손 내리사랑으로 되찾아온 주인공의 간단치 않은 이름 짓기에 할머니식 작명법엔 절로 웃음 진다.
설화 속 이름이 지니고 있는 무수한 고통을 뒤로 한 채 내다버렸다 찾아와서 ‘바리데기’라고 간단명료하게 끝을 진다.
영물 덩어리 강아지 칠성이의 태어남은 바리와의 범상치 않은 교이 흐른다. 외삼촌 등장으로 파란만장한 바리네 가족사의 뒤엉킴이 실타래처럼 꼬이기 시작한다.
요즘 빙산의 일각이나마 북한 상황을 접하고 관광도 갈 수 있으나 저자가 그리는 북한의 실정이 더 가슴에 와 닿음은 왜일까? 등장인물들의 세세한 행적 묘사와 주변 풍경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식구 모두를 잃고 할머니마저 이별하고 의연히 홀로서는 바리의 행동은 가히 압권이다. 할머니이 늘 들려주던 화두 같은 설화 속 바리데기의 생명수 구하는 길이 시작되려는지... 연길과 낙원의 생활, 샹언니와의 만남, 열다섯으로 접어들며 더욱 참담한 질곡의 세월을 살아내는 바리, 따렌을 떠나는 밀항의 배 안 풍경은 한마디로 참담함의 연속이다. 간혹 언론 매체를 통해 보는 탈북자들의 실상을 보는 것 같이 참혹한 정경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여 곡절 끝에 자리한 영국 생활에서 압둘 할아버지의 손자 알리와의 운명적 만남이 시작되고 행복은 잠시 머물 뿐이다. 첫딸을 낳고 알리와 생이별하는 와중에 아이를 낳는다. 바리의 침착하고 성실한 생의 열정이 여기서도 힘을 발휘해 잠시 평안해 보이나 불행은 겹으로 온다는 옛말을 긍정하듯 샹언니의 해후와 함께 딸을 잃게 된다. 애끓는 모정에 연신 눈시울 젖고 빙의 현상 다름없는 경험을 하는 바리를 향해 제발 정신 차리라고 무언의 힘을 줘본다. 주변에 벌어지는 상황들은 전쟁과 테러로 얼룩져 희망보다 잿빛인 세상으로 끝을 맺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리 곁에 남편 알리가 있다는 것.
급변하는 세계정세, 테러, 종교분쟁, 인명경시가 만연하는 세상에서 바리가 구해야할 생명수는 어떤 것이어야할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 사이에 이루어져야할 것을 저자는 주인공을 통해 말하려 한 것은 아닐지... 바리가 수많은 악조건에서도 사람에 대한 사랑, 용서, 화해와 희망을 품고 굴곡 된 삶을 헤쳐 나온 것처럼 세상을 사는 동안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는 글 말미 부분 압둘 할아버지의 말을 적어본다.
“희망을 버리면 살아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바리데기
지은이 황석영 | 출판사 창비 (창작과비평사) | 가격 10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