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도에서 노동운동가로, 다시 법률전문가로
‘당진에 오래 살겠습니다’ 무료상담 바쁜 30대 변호사
당진에 개업한 1번 변호사
안중민
당진에도 믿을만한 변호사 사무실이 문을 열었다. 전에 모 변호사 사무실이 잠시 문을 열었다 철수한 것을 제외하면 당진에 개업한 1번 번호사인 셈.
당진읍 남산입구로 접어들다 길건너편을 보면 기업은행 신축건물 3층에 '안중민 변호사 사무실'이라고 큼지막하게 씌어 있다. 사무실은 지난 19일 개업식을 가졌다. 그러나 변호사 사무실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서 주민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법률상담·자문활동은 3월초부터 일찌감치 시작하게 됐다.
최근 가사나 민형사상의 사건을 가지고 상담을 하러 찾아오는 주민이 많다는데 안중민(39세) 변호사는 이날도 역시 내방객과 길게 상담을 하고 있었다.
“우선 제 입장에서 좋은 점이 두가지 있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활짝 웃으시는 분들을 뵈면 제가 도움이 된 것 같아서 좋고, 이론으로만 배웠던 것을 실생활에 적용해 풀어나갈 때 생동감이 있어서 좋습니다.”
법조인에 대한 최근의 사회적 편견을 대번에 씻어버리는 솔직함에다 안중민 변호사에게는 군더더기 없는 체구·말씨와 독특한 이력이라는 매력이 있었다.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 학생운동에 투신, 광주학살규탄 시위주동 제적, 1년 6개월 복역, 출소후 노동운동에 투신, 노조결성후 파업중 체포, 재투옥, 6개월 복역.... 그뒤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 대외협력국장을 지내던 안 변호사는 ‘변화된 시대가 투사보다는 전문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뒤늦게 사법고시를 준비, 3년만인 96년 제3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미 부인과 두 딸이 있는 형편에 쉬운 결정이 아니었던 만큼 합격했을 때는 비상구의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유학을 가려해도 당시는 출국금지였고, 돈도 없었고, 새로 시작할 밑천은 공부·시험밖에 없었어요. 용접공으로 배운 기술이 좀 있긴 했지만....”
안 변호사는 이 대목에서 호쾌하게 웃었다.
안 변호사가 고향인 서울을 떠나 멀리 당진에 개인 사무실을 두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 아람인터내셔널 등 법무법인에서 일하면서 자기 시간과 자기철학을 가지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둘째, 한다리 경주김씨인 처가가 서산이어서 자연히 당진을 알게 되었다. 세째, ‘무변촌’인 당진이야말로 해야할 일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이런 생각을 누가 읽기라도 한듯 안중민 변호사는 벌써 상담의뢰인이 줄을 서 있어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성의껏 시간을 쪼개 만난다. 덕분에 업무로 잠자는 시간을 빼앗기기 일쑤.
선진국처럼 상담대상과 시간에 따라 적정한 요금이 책정되어 있지 않아 하루종일 무료봉사하고 밤중에 일하는 격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저라도 이곳에 있어서 답답한 문제를 해결하고 각자의 권리를 찾아줄 수 있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물론 할 일이 많겠지만 이미 정해진 법률조차도 활용을 못해 잃어버린 개개인의 '1차적인 권리찾기'에 우선 주력하겠습니다. 또 행정이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도록 자치단체 자문변호도 해볼 생각입니다. 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내에서 지역에 보탬이 되는 일도 하고 싶구요. 무엇보다도 이곳에 가능한 한 오래 오래 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