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봉숭아

구절양장

하수구를 밀치고

그 자리만이 꼭 제자리인 양

보도블록 중앙 맨홀을 뚫고

키다리 봉숭아가 잘강잘강 손짓을 한다

게릴라성 모진 홍수

거목도 쓰러트린 태풍을 비껴내고

지나치는 뭇사람들 짓밟음도 이겨내고

꼬맹이 짓궂은 소꿉놀이 피해서

마치

비루한 꽃대 깃발인 양

붉은 꽃 진 자리 마다

우주마저 담고 있다

희망을 담고 있다

맨홀 사이에 핀 봉숭아 새싹이 그녀의 눈에 들어 온 건 장마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바로 전이었다. 커다란 쇳덩이 사이를 비집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기특해서 출근길을 오가며 눈여겨봤었다. 하루 종일 쏟아지는 장마비에 죽고 말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다시 만난 녀석은 발그레한 꽃 한 송이를 품고 있었다.

“흙으로 안 떨어지고 왜 맨홀로 떨어졌나,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포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힘든 환경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틔우는 봉숭아를 보면서 생명력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시멘트 땅 위에서도 제가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흙과 물이 있다면 어디라도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작은 풀꽃들. 생명이란 이처럼 희망적이다.

이종미 씨는 지난해 그 봉숭아 씨앗을 받아 옆 화단에 뿌려줬더니 요사이 그 자리에서 싹이 났다며 웃어 보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로 줄곧 국어교육과 문인으로 살아온 그녀지만 시를 쓰기 시작한 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고대소설을 전공했고 그 뒤로 수필을 종종 쓰곤 했다. 그러다 5년 전 시의 매력에 빠져 지난해 지구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아직 많이 부족해요. 줄곧 소설 등 장문을 다뤘기 때문에 의미를 함축해야 하는 시 쓰기는 아직 어려워요. 아직 한참 배워야죠.”

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씨는 “아이들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발한 생각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라며 “시험 위주의 교육이 아닌 실질적인 배움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교육을 하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종미 씨

충남 논산 출생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07년 지구문학 신인상 등단

현 신성학원 원장

나루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