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사육을 해봐야 사료값 밀리고 빚만 늘어난다. 시설농사 지어 봤자 영농비도 못 건진다. 가게 문 온종일 열어놔도 손님 몇 명 구경하기 힘들다. 소신 있는 일처리는 상사에게 깨지는 지름길이다.

요즘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푸념이다. 물가는 오르고 일은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는 사기전화에 사람 홀리는 메시지. 도대체가 긍정적으로 생각할 여건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파업시위, 유가폭등, 도하개발회의 농수산 보조금 폐지, 주가폭락, 불신풍조가 만연되어 있다. 앞을 보고 뒤를 봐도 대내외적으로 온통 뒤숭숭하다. 씨 뿌릴 때부터 출하가 불안하고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이 안 선다. 적어도 돌아가는 겉모습은 이정도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사실 긍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은 것이다. 다만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부분을 전체로 일반화시키는 아주 무서운 풍조에 전염되어 있다. 부정적으로 몰고 가는 심각한 사회현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휩쓸려서는 안 된다. 결국 혼란 속에 나 자신의 손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현명하고 올바른 처신을 하여 낭패 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물론 사회적 불의를 방관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옳지 않고 나쁜 부분만 도려내고 치유하면 그만이다. 문제제기를 해도 그것으로 끝내야지 다른 것의 정체성까지 훼손하려 든다면 결국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조심하고 챙기는 것까지는 좋은 것이지만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자꾸 좋은 현상을 연계시키는 습관이 좋은 일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소고기 수입 보다 더 넓은 쟁점이었던 쌀 수입문제가 해결되어 벼농사는 이제 서광이 비친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외형적인 수출도 꽤 잘되어 사상 최고 실적이다. 또한 노후 건강의 족쇄였던 치매와 중풍은 이제 부담이 훨씬 줄어든 상태에서 장기치료를 할 수 있는 요양 제도도 만들어졌다. 사회가 어두울 때 밝게 할 수 있는 긍정적 요건을 자꾸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저온작물에 보온커튼, 지열펌프와 열회수장치, 그리고 수막시설과 석탄난로는 지금쯤 시설농사 짓는 사람이 선택해야 할 운명적 과제가 되었고 축산업에서 조사료대책은 성패의 잣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텅 빈 재래시장에서 내쉬는 한숨을 심호흡으로 바꾸고 목숨 걸고 살길을 찾아야한다.

분명히 길은 있다. 다만 그것이 어려울 뿐이다. 어렵기 때문에 해야 한다. 쉬우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정부를 불신해서는 안 되지만 맹신해서도 아니 된다. 이 순간에도 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괴한 당리당략의 소고기 협상 책임공방 속에서 실체적 진실은 계속 왜곡되고 있다. 정작 중요한 먹거리 안전 확보, 축산농가지원대책, 위생검역시스템은 아예 뒷전이다.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듯하다.

그러나 때는 반드시 온다. 무언가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떡을 주지는 않는다. 어차피 날랜 사람과 준비된 자만이 그걸 받아먹는다. 항상 그래왔다. 그게 자본주의 생리이다. 각자 칼을 갈아야한다. 성공은 장애물 뒤에 숨어서 그대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무언가 다르게 해야 혼자 뛰어 일등 할 수 있다.

경북 어느 시군의 7천여 농가 중에 조수입 1억 이상이 1천 4백여 가구나 된다고 한다. 다른 지역보다 훨씬 돋보이는 화합, 전문성, 다양성이 그렇게 만들었다. 월등한 경쟁력이 된 것이다. 사람이 해낸 일은 다른 사람이 더 좋고 훌륭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희망이란 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