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사람

신평소방대앞 참사, 뺑소니 피의자 검거해

새해 귀경길 30대 가장과 두아들 숨지게 한 혐의

당진경찰서, 4개월만에 수사종결

자가용에 탄 일가족 세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버스승객 네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도주한 뺑소니차량 피의자가 경찰의 끈질긴 추적과 수사 끝에 사고발생 4개월만에 검거됐다.

당진경찰서는 5월 15일 이 사건의 피의자 조병인(51세, 경기도 안산)씨를 뺑소니 혐의로 긴급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한 데 이어, 16일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종결했다.

집집마다 새해맞이 인사가 한창이던 지난 1월 19일, 귀성길에서 상경하던 30대 가장과 두아들 등 일가족 세명을 현장에서 숨지게 했던 신평면 금천리 신평소방대앞 도로 참사사건은 이로써 4개월여만에 수사가 일단락됐다.

어둠속에 뛰어든 불법 좌회전차량

1999년 1월 19일 밤 8시 35분을 막 지난 시각, 운산 처가에 인사를 하고 상경하던 이종길(37세, 서울)씨는 아내 이은경(33세)씨와 두아들 연호(10세)·재호(5세)를 자신의 세피아 승용차에 태우고 당진에서 삽교천을 향해 신설된 국도 34호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이 도로는 지난 추석 때 임시개통된 데 이어 이씨와 같은 신정 귀성객을 위해 불과 보름전에 개통된 왕복 4차선의 준고속화 도로였다.

그런데 이씨의 차가 신평면 금천리 신평소방대 앞을 지날 때 왼쪽 금천리 진입로 쪽에서 갑자기 코란도 한대가 튀어나오더니 중앙선을 넘어 이씨의 차가 달리고 있는 편도 1차로 앞에 끼어들어 두차는 곧 추돌할 위기였다.

이씨는 황급히 2차로쪽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중심을 잃고 중앙선을 넘었고, 그때 당진방향으로 마주오던 충남고속버스와 운전석 옆면을 부딪히면서 순식간에 그곳은 참사현장이 되고 말았다.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것은 사고 직후인 밤 8시 38분. 신고를 받은 경찰이 서둘러 도착했을 때 이씨와 두아들은 뇌탈출과 두부탈출 등으로 이미 숨져 있었고 이씨의 차는 어둠 속에 휴지조각처럼 구져져 있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당진경찰서 뺑소니 전담반 이재훈(36세) 경장은 “시골에서 갖고 오는 길이었는지 차주변에 호박과 곡식, 토끼 등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서 더 참담해 보였다”고 말했다.

일가족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은경씨는 초진에서 뇌진탕과 전치3주의 진단을 받았으나 목뼈가 심하게 부러진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서둘러 서울로 이송, 수술을 받고 지금까지도 치료를 받고 있다. 부인 이씨는 현재 신체적·정신적 쇼크 때문에 경찰과의 통화도 직접 할 수 없는 지경인 것으로 알려졌다.

횟집아줌마 3명등 버스승객 상해

피해자는 이밖에도 더 있었다.

충돌한 충남고속 소속의 버스운전자 이성구(38세)씨와 탑승자 이윤자(50세, 여)·최선자(51세, 여)·이목하(57세, 여)씨 등 4명이 머리와 경추쪽에 전치3주의 상해를 입었다. 이들 세명의 50대 여성 탑승자들은 삽교천 일대 횟집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난데없는 변을 당했다.

이밖에 이 사고로 인한 재물피해액도 두 차량의 수리비 등 1천2백여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경찰은 조사했다.

그러나 정작 이 참사의 원인제공자인 코란도 승용차 운전자는 현장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런 물증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버린 이 뺑소니 피의차량을 추적할 유일한 단서는 번호판 뒷자리수가 '××× 8474'였다는 한 목격자의 진술 뿐이었다.

목격자의 추격과 재빠른 신고

목격자는 이씨 일가족이 탄 세피아 승용차의 바로 뒤에서 운전하던 좥아시아우등관광조합좦 버스 운전수 안명환(28세, 서산)씨였다.

안씨는 사고를 목격하고 바로 뺑소니 차량을 추격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휴대폰으로 112에 신고, 사고상황과 뺑소니 차량번호, 그리고 자신의 진술이 필요할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 본인의 연락처까지 남긴 침착한 신고자였다.

안씨의 신고로 뺑소니 피의차량의 진입방향을 확인한 당진경찰은 인주검문소에 연락, 코란도 자주색 훼밀리 ××× 8474 운전자 신원확보를 지령하는 한편 형사 8명의 공조수사로 서울·경기·인천을 중심으로 전국에 일제히 같은 숫자의 번호판을 가진 차량수배에 들어갔다.

그 사이 피의차량은 인주검문소의 검문에 불응, 또다시 도주했다는 연락이 접수됐다. 사고 당일 밤을 꼬박 새워 전산망으로 차량조회를 한 결과 20일 아침, 신고와 동일한 차량 1개가 떴다.

‘사고직후 휴대폰 통화’ 추적

경찰은 경기도 안산에 사는 피의자 조씨를 수배해 안산 사동파출소에서 조사했으나 조씨가 밀엽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 ‘사고 당일 집에 있었다’는 완강한 본인의 주장과 가족의 알리바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조차 아무런 물증을 찾아내지 못함으로써 이 사건은 자칫 미궁에 빠질 뻔했다.

심증을 굳게 가지고 있던 경찰이 다시 수사를 재개한 것은 피의자 조씨의 휴대폰 사용내역을 의뢰한 결과가 나오면서부터였다.

1월 19일 사건발생 10여분 후인 밤 8시 56분부터 1시간에 걸쳐, 그러니까 피의자가 인주검문소를 통과한 뒤라고 추정되는 시각에 며느리에게 전화한 다섯통의 통화기록이 그것이다.

뺑소니반 이재훈씨에 따르면 2월 중순의 조사에서도 부인하던 며느리는 4월 27일 서너시간의 설득 끝에, 사고 시간 조씨가 자신에게 전화해 '당진에서 경찰관이 갈 것이니 나는 집에서 개 낳는 걸 보고 초상집에 간 것으로 하라'고 행적을 조작한 사실을 실토했다.

4월 28일 검찰의 구속지휘로 수배에 나선 경찰은 5월 14일 안산에서 피의자 조씨를 검거했다. 조씨는 좌회전이 금지된 구역에서 좌회전한 과실로 세피아 운전자 가족 3명을 숨지게 하고, 버스승객 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현장에서 구호조치없이 도주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그러나 피의자 조씨는 아직까지 사건 당일의 행적과 기록에 나온 휴대폰 통화사실조차 전면 부인하고 있으며 작년 10월, 자신의 차량 앞면 번호판을 분실했다는 신고가 접수된 사실을 근거로 번호판을 훔쳐간 사람이 사고를 낸 것이라고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그러나 사건 당시 인주검문소에서 청원경찰이 목격한 도주차량의 번호판이 앞뒤가 동일했다며 조씨의 주장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새해벽두에 신설도로에서 일어난 이 불행한 사고는 피의차량이 상대차와 직접 부딪치지 않은 좥비접촉사고좦여서 다른 어떤 뺑소니 사고보다 수사상의 어려움이 많았으나 다행히 목격자가 있었으며 목격자의 신속하고 정확한 신고가 바로 사고현장조사로 이어져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형사계와의 원활한 공조수사와 끈질긴 추적으로 해결될 수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