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산 상봉에 올라가서 동쪽을 바라보면 푸른 물결, 푸른 바다, 파도치는 뭉게구름 붉은 노을 속을 뚫고 서서히 세상 밖으로 나타나는 모습 그 햇빛이야말로 장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송악산에 올라가서 사방을 살펴보면 동쪽에는 한나루(한진포구) 바다가 눈앞에 보이고 옛날 토정 이지함 선생이 천기를 보고 육지가 바다가 된다고 하는 것을 미리알고 선량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거주민들을 설득시켜 하월 하일 하시에 바다가 되니 하루속히 피신들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던 한나루이기도 하다.

1894년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할 당시 백성들은 궁핍한 생활로 민생고는 도탄에 빠져 극도로 핍박하여 혼수상태에 이르러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다시피 백성들은 혼란에 이르러을 당시 전라도 출신 전봉준 대장이 영도한 동학당을 조직해 동학란을 일으켜 농민들이 합세해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동학군을 모아 농민운동을 해 동학혁명을 일으켜 구태민안을 하기 위해 전봉준 대장은 목숨을 걸고 북으로 전진을 할 당시 충청도 출신 이종만이라는 사람이 전봉준 대장의 지시를 받아 혁명군 2000명을 인솔해 송악산에 올라와 진을 칠 당시 동서남북을 살펴본 바 동북서쪽은 바다로 형성되어 왜병들이 조수 관계를 파악하지 못할 것을 판단하고 진을 치고 왜병들이 공격에 방어하기가 중요지점이라 생각을 하고 암석으로 금성철벽같은 성을 쌓아 요소요소에 파수병을 배치하고 왜병들 공격에 만전의 태세를 갖추고 하시라도 파죽지세로 왜병의 공격에 철두철미하게 임전무퇴로 전투에 임하라고 군사들한테 지시를 하고 군사들의 사기를 높여주고 이종만 혁명대장은 성내성외로 순시를 하고 왜병들을 일망타진 시키라고 하명을 하였다고 한다. 군량미는 독지가들의 제공을 암암라에 하였고 2천명 군사들이 마실 물은 성밑 약 600m 거리에 우물 팔 곳을 선정하고 이종만 대장의 지휘하에 우물을 팠었던 바 물도 잘 날뿐더러 물이 좋아서 물을 마시고 배탈 난 군사들이 없어서 이종만 대장의 인기가 충천하여 혼연일치가 되어 명령에 복종하고 3년 동안 임전무퇴로 전투에 임해 승전을 했고 왜병 패전병들은 지금 송악면 정곡리 소지명 배울이라는 포구에서 배를 타고 하처로 도망을 갔다는 전설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송악산 상봉에 이종만 혁명대장이 심은 수백년된 고목나무가 우뚝 서 있었는데 6?5 동란 당시 인민군들이 캐버리고 방공호를 파기 위해 고목나무는 형체도 없고 훼손됐다. 그리고 송악산중턱에 큰 바위가 우뚝 서 있었는데 바위를 보고 이종만 장수바위라고 호칭을 했다. 성을 쌓을 당시 그 바위를 등에 업어다가 성을 쌓으려고 업었던 등 흔적이 현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 바위 이름이 이종만 장수 바위라고 했었는데 수백년 동안 송악산을 지키는 파수병처럼 있었는데 송악면 전대리 저수지 제방뚝에 사용됐다. 그리고 왜병들하고 전투당시 성내에서 혁명군들이 성 밖으로 왜병들에게 던졌던 돌이 엄청나게 많이 쌓여있었는데 그 돌마저 제방 뚝으로 사용돼 훼손됐다.

십여년 전만해도 2천명 군사들이 마셨다는 우물물도 옹달샘처럼 물이 고여 있어 나무를 하러가서 갈증이 나면 그 물을 마시고 갈증도 해소하고 아침에 먹었던 보리밥도 소화가 돼서 시장기가 들어 나무를 하다말고 집에 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 우물이 흔적조차 없어지고 그 근처에 호스를 연결해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 우리들은 2천명 군사들이 그 우물물을 마셨다면 그 우물의 규모가 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우리 송악면민들은 면에서 최고 높은 송악산 유적을 발굴해 옛날 모습을 후손에 의해 지켜나가고 관광객들에게도 왜병들과 전투해 승전을 하였다는 성지도 보고 군사들이 사기가 충천해 왜병을 파죽지세로 싸워 승전하였다는 물도 마시고 갈증도 해소하고 이종만 혁명대장의 공적을 널리 알리고 옛 모습을 상상회고심할 것을 우리 면민들은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을 바란다.

1919년 유관순 열사가 3월1일 태극기를 양손에 들고 전 국민 세계방방곡곡에 대한민국 만세를 호소할 당시 송악산 상봉에 봉화를 올려 면민들이 이를 보고 일치단결 합심해 독립만세를 외치었던 곳이다. 그 당시 송산면 봉화산과 송악산은 한날한시에 봉화를 올려 만세를 외쳤던 봉화산이기도 하고 송악산이기도 한 명산을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적지 발굴을 해 우리 면에 이러한 명산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간 숨어 있던 유적을 발굴해 당진군민들 뿐 아니라 전국방방곡곡에 알려야 할 것이다.

이상은 송악면 석포리 송악산 산하에 거주했었던 故 이형규씨 향년(110세)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