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얏”

어느 따뜻한 봄날 범수의 비명소리와 함께 화분이 깨지고 말았다. 깜짝 놀란 은혜는 범수의 발을 만져본다. 아파하는 범수는 은혜에게 화를 낸다.

“왜 신문을 이렇게 쌓아 놓은 거야?”

“괜찮아?”

“밖에 내놓으면 아무나 와서 가져가는데..꼭..그렇게 쌓아 두어야해?

“내일 리어카 오는 날이야...”

범수는 그냥 내다버려도 될 것을 꼭 신문을 묶어 놓아두었다가 폐품 수거하는 뽕짝할아버지할머니부부에게 주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은혜는 신문모서리에 걸려 넘어진 범수를 보며 한편으로는 통쾌하다. 결국 그날 범수는 병원에 가서 기부스를 하였다.

다음날 아침 멀리서 귀에 낯익은 뽕짝음악소리가 들린다. 은혜는 신문을 들고 리어카로 다가간다. 뽕짝할머니는 은혜를 보고 다가와 신문을 잡아준다.

“잘 지냈어?”

“네..아뇨..”

“네야? 아뇨야?”

“호호호”

“뭐, 좋은 일 이라도 있어?”

“사실은, 어제 제 남편이 화분을 나르다가 신문꾸러미를 미처 보지 못하고 넘어졌어요.”

“많이 다친거야?”

“아니예요. 일주일후에 기부스 풀면 괜찮아진대요..”

“근데, 왜 자꾸 웃어?”

“그러게요, 남편이 넘어져 기부스까지 했는데 말예요”

뽕짝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항상 함께 한다. 깔끔한 옷차림은 아니여도 그 두 노부부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으며 비록 볼품없어 보이는 리어카라지만 가끔 할머니를 뒤에 태우고 여유를 즐기셨고 음질 좋은 카세트는 아니여도 구형카세트에서 들리는 뽕짝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또한 그들은 변함없이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어김없이 나와서 폐품을 수거해갔으며 서로를 의지하며 리어카를 밀고 당기는 그들의 모습은 작지만 부부의 참모습을 볼수 있었다. 그래서 은혜는 그 노부부를 좋아했다. 그런 할머니에게 어느날 핸드폰이 생겼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거야?”

“아, 이건 문자메세지라는 건데요, 자, 보세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문자 보내는 방법을 할머니에게 알려준 은혜는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있으니 문자메세지가 하나 들어온다.

“준영엄마, 고마워!”

“뭘요, 고생하세요!”

그 뒤로 할머니는 하루에 한번씩 휴대전화로 문자메세지를 보내왔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아, 준영엄마!”

“준영엄마, 밥 먹었어?”

“준영엄마, 내일 봐!”

은혜는 할머니에게 답장을 보냈다.

“오늘 황사래요, 마스크 꼭 하세요.”

“남편 발목도 예전처럼 좋아졌어요.”

“할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그렇게 할머니의 휴대전화 사랑이 두달 쯤 지났을 때이다. 아침이면 리어카에서 들리던 뽕짝소리가 들리지 않더니 하루에 한번씩 꼬박꼬박 보내오던 할머니의 문자도 없다.

“할머니, 왜 요즘 폐품 수거하러 안 오세요?”

“할머니, 밥 잘 챙겨 드시고 계세요?”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거예요?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답장이 왔다.

“응, 밥 잘 챙겨먹고 있어!”

“다음주에 폐품 수거하러 갈거야.”

며칠 뒤 약속대로 어김없이 그 시간에 뽕짝할아버지할머니의 리어카가 폐품 수거하러 왔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리어카, 그 위에 구형카세트 모두 그대로인데 할머니만 보이지 않는다. 은혜는 신문꾸러미를 들고 나오며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할머니는 어디계세요?”

“응... 하늘나라에...”

“네? 저랑 문자를 계속 주고받았는데요..?”

“응...내가 보낸거야..할망구가 그렇게 좋아하던 휴대전화를 버릴 수가 없었어..”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짐을 정리하신다. 은혜는 혼자서 리어카를 밀고 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자메세지를 보낸다.

“다음 주에 오시는 거죠?”

“내가 안 오는 날은 할망구 따라 간 날이여.”

뽕짝할머니는 지금 세상에 없지만 할머니가 좋아했던 휴대전화를 보며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그리워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은혜의 문자메세지를 보고 할머니가 했던 것처럼 대신 문자메세지를 보냈던 것이다.

아침이었지만 은혜는 펜을 들고 일기장에 무엇인가를 써내려 간다. 그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참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더 많다.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나 나는 오늘 운 좋게 세상의 아름다움 중에 하나를 보았다. 뽕짝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화려하지 않은 인생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아껴주고 의지하며 사랑했던 그들의 모습은 사랑을 막 시작한 청춘남녀보다도 더 강렬했다. 각박한 세상이라고 욕하지 마라!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왜냐하면 모습은 초라하고 외소해도 화려함에 뒤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심장을 자꾸 두드리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