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덩이

웅덩이를 지나다

그만 바지를 적시고 말았다

발을 헛딛는 순간

갇힌 물에서 날갯소리 들려 왔다

내리는 비에

웅덩이는 깊어져 가고

푸석거리는 몸이 견디기 어려웠던 나는

눅눅함도 축복인 양 같이 다녔다

해가 나자

비를 버금은 잎들 반짝거렸다 그 속으로

바지의 얼굴을 끌고 가면서

마를수록 선명해지는 상처 하나 끌고 가면서

다시 푸석거리는 소리

구석에 앉아 마른 얼룩을 부비면

흙먼지였던 당신

그제야 내게서 날아 올랐다

기억은 웅덩이처럼 작아져 갔다

나희덕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 중에서

- 시 소개해주는 남자: 정봉식(호서고 교, 본지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