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지 않는 마음

나희덕

여기에 내리고

저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러 가는 길

길가의 풀들이나 스치며 걷다 보면

발 끝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멩이 몇 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 길

오로지 젖지 않는 마음 하나

어느 나무그늘 아래 부려두고 계신가요

여기에 밤새 비 내려

내 마음 시린 줄도 모르고 비에 젖습니다

젖은 마음과 젖지 않은 마음의 거리

그렇게 먼 곳에서

다만 두 손 비비며 중얼거리는 말

그 무엇으로도 돌아오지 말기를

거기에 별빛으로나 그대 총총 뜨기를

나희덕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뿌리에게』, 『그곳이 멀지 않다』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외

김수영문학상 수상(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