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필자에게 “큰 사고를 당하거나 죽을 병에 걸리면 연락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에는 도와달라는 얘기이다. 그때에 생전 유서(living will)를 쓰겠다는 표현이다. 물론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요즈음은 자기 목숨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생명경시 풍조라고 하는 것이다.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죽음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남을 쉽게 죽이고 얻어내려고 하거나,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리거나 하는 일이다. 그 결과 살인, 자살이 늘고, 낙태 또한 아무런 죄의식 없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를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사회라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단하나의 목숨을 가진 소중한 존재이다. 이렇게 소중한 것이 우리의 목숨이다. 그래서 생명(生命)이라고 하는 것이다.
‘생명문화’라는 말은 가톨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처음으로 표현한 용어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로 인해 낙태와 안락사를 허락하는 사회를 죽음의 문화라고 비판하면서 인류가 생명의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표현한 말이다. 이 생명문화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창조세계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된다. 이 창조 세계에 깃든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인간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바탕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가. 이 소중한 생명을 어떻게 소중하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현대사회에 만연해 있는 죽음의 문화를 어떻게 생명의 문화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학자들은 말한다. “생명의 세계관이 문화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생명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생명마케팅’개념을 도입해서 사람들에게 생명의 소중한 가치와 철학을 홍보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교육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풀어나갈 수 있다. 21세기는 새로운 세상이다. 평생학습사회이다. 누구나 배우고 싶으면 배울 수 있는 사회이다. 지역 사회에서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앞장서면 가능하다. 교육할 수 있는 기관에서 앞장설 수 있다.
필자는 필자가 봉사하고 있는 대건노인대학에서 조용하게 교육을 시작하였고 계속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교육에 대한 반응은 물론 획기적으로 긍정적이다.
2009년 5월21일 대법원이 국내 처음으로 존엄사 인정 판결을 내렸다. “품위있게 죽을 권리가 있다”라는 이 판결은 우리 사회에서 ‘존엄사란 무엇인가?’라는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우리의 인생은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 끝맺음이 편안하고 아름다우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는 체계적으로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톨스토이는 말한다. “이 세상에서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를 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라고. 우리는 모두 조병화 시인의 묘비명처럼 말할 수 있도록 교육을 통해 준비하면 어떨가 한다.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 나왔다가 /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