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김정환 신부 진행
순교자 기억하고 넋 기리는 시간 가져
설립 70주년을 맞이한 당진본당이 지난달 25일 저녁 본당에서 신도들을 대상으로 ‘당진본당 역사특강’을 열었다.
이날 특강은 내포교회사연구소 소장인 김정환 요한 신부의 강의로 진행됐다. 내포교회연구소는 교회 형성 이후 많은 순교자를 낳아 ‘한국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라고 불리는 내포지역 교회 역사를 연구하는 곳이다.
강의를 진행한 김정환 신부는 “지난해 대전교구 60주년 도보성지순례 표어인 ‘기억하고 행하여라’가 당진본당을 방문했을 때 생각나 정한 것”이라며 “타국에서 건너와 신앙을 위해 순교하신 분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6·25 전쟁 때 돌아가신 신부님에 대해 조사하러 당진본당에 왔는데 당시 순교한 공 마리오 신부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었다”며 “순교자의 존재가 잊혀져가는 현실이 서글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날 강의에서 김정환 신부는 당진본당이 합덕본당으로부터 분리된 1939년부터 현재 본당 모습이 갖춰진 때까지의 본당 역사에 대한 사진자료를 선보이고 해설했다. 그는 6·25 전쟁 때 대전형무소에 끌려가 순교한 본당 4대 주임 공 마리오 신부에 큰 비중을 두며 “59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추모비를 세우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편 당진본당 70주년 기념사업 중 하나인 본당역사서 편찬은 2011년 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당진본당 역사
당진본당은 1939년 4월 합덕 본당으로부터 분리돼 설립됐다. 이미 그 전부터 합덕본당 신도가 2300여명이 넘어 본당을 분리해야 했으나 신부가 나오지 않아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다 1939년에 사제가 7명 생기자 그 해에 당진본당이 설립된 것이다.
초대 주임 포 에밀리오 신부의 부임으로 출발한 당진본당은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와 행보를 같이 하며 암울한 시기를 보냈다. 4대 주임인 공 마리오 신부는 6·25 전쟁 때 체포 돼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 전쟁이 발발한 해 8월에 수감된 공 마리오 신부는 한 달 후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군 철수 후 시신을 수습하려 했지만 함께 피살된 10명의 신부 중 수단을 입은 시신은 1구밖에 찾지 못했다.
이후 당진본당은 신부 없이도 신자들만의 열성으로 본당을 이어나가며 보육원, 유치원, 성모병원 등을 설립하는 등 지역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1965년 성전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여 1967년 현재 성당 건물을 세웠으며 이듬해 봉헌식을 갖고 제대로 된 성당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