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조계사 내에 설치된 ‘반야심경’ 268개 철판 하나하나에 용접으로 글씨를 쓴 것이다.
▲ 서울 종로구 조계사 내에 설치된 ‘반야심경’ 268개 철판 하나하나에 용접으로 글씨를 쓴 것이다.

변치 않는 고금의 진리 되새기고 싶었다

서울 조계사에서 연말까지 반야심경 전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안국역에서 내렸다. 6번 출구로 빠져나와 전통과 현대가 함께 살아 숨 쉬는 인사동 거리를 마주했다. 그 거리를 걷고 걸어 당도한 곳은 ‘반야심경’ 앞.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 세워진 가로 14미터 세로 7미터의 조형물 '반야심경'은 한 글자 씩 용접으로 작업한 268개의 네모진 철판으로 돼있다. 8톤이나 되는 무게, 2년이 넘는 작업 기간, 어마어마한 제작비. 이 작품을 말해주는 요소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런 수치들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종섭 화백은 말했다. “진정으로 살아있는 건 작품에 담긴 작가의 메시지” 라고.

불나비 되기 위한 통과의례

대웅전 앞에 전시된 작품이 위용으로서 사람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면 조계사 내 나무 갤러리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시회는 이 화백의 열정으로 또 다시 감탄을 자아낸다.

그동안 이 화백이 반야심경을 써온 작업 과정이 사진으로 전시된 것.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든 작업이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 근처를 겉돌기만 하는 불나비는 진정한 불나비가 아니듯 불 속에 직접 뛰어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겐 이 작업이 불나비가 되기 위해 겪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화백에게 ‘반야심경’은 ‘세상을 보는 창문’이다. ‘컴퓨터에 운영체제가 깔려 있듯 우리 사회에도 세상을 볼 때 기준 역할을 하는 창문이 있을 텐데 그게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했다는 이 화백. 그는 오랫동안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많은 영향을 끼친 세 편의 글을 용접으로 새기기로 결심했고 그 첫 번째 작업이 ‘반야바라밀다심경’이었다.

그의 다음 작업은 주기도문과 국민교육헌장이 될 것이다.

종교를 떠난 고금의 진리

‘I&Korea’라고 이름 지은 이 화백의 프로젝트는 불교의 반야심경, 기독교의 주기도문을 소재로 했지만 그는 이 작업이 종교와 상관없는 고금의 진리를 다룬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교가 아닌 철학적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문자의 형태를 가졌지만 그 의미가 현대에도 살아서 작용하는 글로 어떤 게 있을까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반야심경과 주기도문, 국민교육헌장을 쓰기로 했죠. 국민교육헌장도 지금은 아니지만 제가 어렸을 땐 줄줄 외울 정도로 익숙한 글입니다.”

이 화백은 반야심경을 쓰며 인상적이었던 구문으로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를 꼽았다. ‘가보자, 가보자, 언덕 넘어 가보자. 그 뒤에 깨달음이 있다’라는 뜻이라고.

“삼천배와 이천구백구십구배는 하나 차이지만 삼천배에 이른 것과 그렇지 못한 건 큰 차이가 있어요. 저 또한 이번 작업을 계획하면서 힘든 작업이라는 게 눈에 보였지만 해본 것과 안 해본 것이 다르듯 제가 가진 의도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길 바라며 작업했습니다.”

빛 속에서 빛을 따라가는 일

반야심경을 쓰는 작업은 꽤나 긴 과정이었다. 철판에 용접을 하면 1cm정도의 쇳물이 끓어오르는데 그 쇳물을 휘저어 가며 글씨를 썼다. 그렇게 끓는 쇳물을 층층이 쌓아가며 반야심경 제목을 포함한 268자를 완성했다. 이 화백은 그동안의 작업을 ‘빛 속에서 빛을 따라가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용접하는 순간 생기는 불꽃때문에 사방이 환한 가운데 희미하게 보이는 쇳물을 따라 글씨를 썼다는 것.

“환한 빛 속에서 쇳물이 내는 빛을 찾아야 하는 작업이었는데 볼 수 있는 쇳물은 작고 금방 사라져서 글씨가 보이지 않았어요. 차라리 눈을 감은 듯 어둠 속에서 마음을 따라간다는 생각으로 글씨를 썼죠.”

이 화백에게 철판에 용접으로 글을 쓰게 된 이유를 물었다.

“사회적, 문화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마음을 먹고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글들을 쓰기로 했는데 가벼운 곳에 실린 것보다는 기왕이면 인간이 만든 것 중 가장 강하다고 상징되는 쇠에 써서 전하고 싶었습니다.”

고마운 사람들과의 인연

현재 이 화백의 반야심경이 전시된 조계종 조계사는 바쁘게 돌아가는 빌딩숲 속에서 은은한 듯 웅장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웅전 앞마당에 설치된 반야심경은 무게가 8톤이지만 띄엄띄엄 나열돼 있어 무겁고 답답한 느낌이 없다. 비어있는 공간 사이로 들어오는 풍경과 어우러져 이 화백이 추구한 ‘살아있는 고금의 진리’, ‘세상의 창문’이라는 의미가 더 잘 전달되는 듯하다.

이 화백은 14일 전시회 개막식에서 “작업은 내가 했지만 작품으로 만들어 준 건 조계사 사람들”이라는 말을 했다. 작품과 공간이 어우러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적합한 장소에서 전시할 수 있었기에 작업물이 비로소 작품이 되었다는 것.

그는 “아무 연고도 없는 자신의 작품을 종교를 떠난 순수한 작품으로서 받아준 조계사에 감사하다” 고 전했다.

“어떤 공간에 전시되느냐에 따라 전시 형태가 달라졌을 텐데 조계사 스님들 덕분에 탁 트인 야외에서 그것도 반야심경의 상징성을 더욱 발할 수 있는 조계사 내에서 전시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화백은 자기 일처럼 도와줬던 동료들과 작업 기간 동안 붙어 다니면서 사진으로 전 과정을 담아줬던 사진작가 정용재 씨에게도 이 기회에 감사하다는 표현을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작품을 설치하며 조계사에서 만난 이름 모를 할아버지에게도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늘 조계사를 찾는 할아버지는 대가없이 이 화백에게 신경을 써주었다고.

“조계사에서 우연히 만나 작품 설치할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뵙고 있어요. 설치할 때 조언도 해줬고 가끔 먹을 것도 나눠주러 오시는데 작은 손길이라도 제겐 큰 힘입니다. 너무 고마워 포옹으로 마음을 전하려 했더니 소녀같이 쑥스럽게 웃으시던 모습이 인상 깊어요. 작품을 통해 만난 소중한 인연입니다.”

조형예술로 시도한 소통

이 화백은 “나를 움직이는 뭔가가 있다면 다른 사람도 공감하고 움직일 것”이라며 “관람객들이 이번 작품에 담겨진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알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야심경으로만 보지 말고 반야심경에 담긴 뜻을 작가가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 의미를 봐달라는 것.

“반야심경은 여러 형태로 존재합니다. 책으로도 있고 나무에 파기도 하죠. 용접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반야심경을 찍어내는 또 다른 방법 중 하나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가 반야심경을 용접으로 쓴 건 기계적인 과정이 아니라 강한 쇠에 새겨 변치 않고 우리 삶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영향을 미치는 진리를 깨닫기 위함이었죠.”

잘 느끼진 못하지만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음악, 미술 등의 예술작품에도 작가가 의도한 서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 화백은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을 조형예술로 표현한 것이다.

“오감은 언어를 뛰어 넘습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제 의도를 조형예술로 표현하는 것도 감각으로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죠. 직접 와서 보면 왜 철판에 반야심경을 새겼는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철판에 용접으로 써야지’가 아니라 ‘내 의도를 잘 담아줄 그릇이 뭘까’하는 데서 출발한 이종섭 화백의 반야심경. 굴곡진 역사를 관통해 내려오는 고금의 진리가 고통으로 낳은 이 화백의 작품을 통해 오늘도 빛을 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