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볕에 날마다 내어 다 말리고, 걷어 내고나니 가을들판이 점점 하늘처럼 비워지고 있다.
갑자기 수은주가 뚝 떨어져 벌써 첫눈이라도 오려나 하늘을 치켜보는 동안에도 손만은 다른 생각을 만지작거릴 수 없겠는가 보다. 일조량도 고르고 태풍 피해도 없었던 올해는 풍년이다. 그러나 생산량만 가지고 풍년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게 영농자재비가 해마다 인상돼 쌀값만 하더라도 작년 시세를 밑돌아 올해도 일 부자가 된 셈이다.
▲밭에서는
집 모퉁이에서 서리태를 도리깨로 두드리는 전대리 전원오(68)씨. 그의 아내는 저 만치 건너 앉아 작은 방망이로 토닥토닥. 다 털면 한 말 남짓 나온다는 서리태를 정답게도 털고 있다. 잘 마른 콩대 같은 손으로 타작마당 구경꾼에게도 식혜 한 사발 건네는 넉넉함에 왠지 부끄러운 오렌지 캔 두 개를 건넸다.
전대리 정종남(77)·조순원(73)씨 부부가 집 앞 밭이랑에 마주앉아 씨 마늘을 묻어가고 있다. 추위를 견디는 힘이 좋은 마늘은 정말 약이다 싶어서 많이 드시라고 했더니 “우리야 얼마 먹간, 자식들 보내주고 그 재미지” 하신다.
전쟁 참전용사로 다치고 또 지병으로 10년 넘게 약을 먹어왔다는 정종남씨를 다시 보니 얼굴에 병색이 역력하다. “인제 완전히 낫간, 그저 병하고 친구하며 늙어가는 거지” 앞으로 살아있을 날을 꼽아보듯 씨 마늘 뿌리를 아래로 세워 꼽아 묻어간다.
무밭에서는 박정희(49) 씨네 청원무 출하작업이 한창이다. 다섯 개씩 한 묶음에 넣고 허리띠를 둘러 서울로 갈 참이다. 한 단에 천 원이란다.
“풍년이어서 좋긴 한데 작년보다는 값이 없어요. 그렇다고 안 뽑을 수도 없고.”
속 모르는 길손님이 상품에서 빠진 무를 얻을 수 있을까 차를 세우는데 인심 좋은 밭주인이 선뜻 허락한다. 근심을 내어 말리려 시골길을 천천히 달려보는 사람과 폭락한 시세에 쳐진 농부의 마음자락을 바지랑대에 높이 걸쳐놓고 여문 가을햇살에 잘 엮었다가 내렸음 좋겠다.
▲논에서는
논마다 벼 수확이 거의 끝난 요즘 콤바인으로 다른 집 추수부터 하느라 김의숙(45)씨는 이제야 벼를 거두고 있었다.
“콤바인 살 때는 가장 좋은 때 내 추수를 하려고 기계를 사죠. 근데 콤바인 유지비가 만만치 않아 다른 집 논도 해주다보니 정작 꼴찌로 우리 논에 들어오게 되네요.”
그래도 풍년이냐고 물었더니 곁에 섰던 아저씨가 “풍년이면 뭘혀, 쌀금이 그렇게도 없으니.” 맞는 말이다. 내 입이 쓰다. 산에 단풍은 그저 고운 아기 손이지만 고추밭에서 붉어지고 조금씩 말라가는 익은 고추는 맵고 아픈 엄마 손이다. 콤바인에서 볏짚까지 잘려져 나오는 편한 세상이 되었는데 혼자 적막하게 볏단을 묶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따로 팔라고 묶제 인삼밭에도 쓰고.” 할아버지는 콩 타작 기계에 손이 다쳐서 병원 갔단다. “내가 손 다쳤음 칠칠맞아 그런다고 했을껴” 하며 슬쩍 할아버지 흉을 섞어 볏단을 보란 듯 던진다.
▲과수원에서는
청금리 이용상(34)씨는 사과 과수원 5000평을 임대해 2년째 짓고 있다.
예산이 고향이고 어려서부터 과수원 일을 보고 자랐다는데 “서울 생활을 접고 잠시 쉬러왔다가 사과에 발목이 잡혔다”는 용상 씨네 농장은 올해 이렇다 할 태풍피해도 없었고 햇살도 좋아서 사과가 당도가 높고 열매도 좋다.
“올해는 경기가 좋지 않아 그런지 거래가 활발하지 않네요”
부사를 주로 하는데 마침 내일 작업을 하려고 노란 상자를 사과나무 아래로 옮기고 있었다.
부사는 서리가 내린 후에 따야 꿀이 박혀 제 맛이 난다. 서리가 내린 후에 따야 하지만 나무에 달린 채 눈이 내려 기온이라도 뚝 떨어지면 얼어서 상품가치가 없게 된다. 다행히 내일 작업하는 것은 창고 보관신세가 아닌 거래처로 간다니 반갑다.
“하늘에서 가까운 한 귀퉁이는 새가 먹고, 길에서 가까운 낮은 가지는 더러 지나는 사람 몫이 돼요” 어쩔 수 없다. 너무 먹음직스럽고 탐스럽게 키운 이용상씨 탓이다. 적절한 시기에 잘 팔아서 돈이 되었음 좋겠단다. 수확이 끝나면 거름을 주고 하늘로 자란 가지를 잘라주는 일이 남아있고 그 때부터 이듬해 봄까지 짬이 난다니 다른 궁리는 말고 장가 갈 궁리를 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