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진 것 없고, 외로운 이들에게 겨울은 지나치고 싶은 계절이다. 시린 마음을 덥혀 줄 여유도 여유지만, 무엇보다 아랫목 지필 연료 걱정이 먼저 앞서는 게 현실이다. 당진군 인구 3%(4,933명, 1월31일 기준)는 생계비 등을 지원받는 복지대상자들이다. 여기에 기초노령연금 수급자인 65세 이상 노인은 14,402명으로 전체 인구 10%에 달한다.
길고 긴 겨울밤, 쉽게 잠 못 드는 어려운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용된다고 해서 벽지도 새로 못 바르고 살아요.
그냥 여기서 보내다 저 세상가야 하는데,
나가라고 하면 어디로 갈 지 막막하지.”
송악 월곡리, 윤경순 할머니
“처음에는 우리 멋대로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날 수록 엄마,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져서 혼자 감당하기가 어렵더라고요. 특히 동생이 잘 못해도 결국에는 제 책임이 되잖아요. 제가 하는 대로 동생이 그대로 따라할 테니, 나쁜 짓도 못하게 되더라고요.”
합덕읍 상흑리 우정재, 근재 형제
독거노인 윤경순 할머니와 소년가장 우정재 학생
올해 이웃돕기 성금 모금율 10%, 기업 참여도 낮아
“눈 오면 넘어질까, 아랫목서 꼼짝 안해”
송악 월곡리, 윤경순 할머니
거실 바닥이 얼음짱 같다. 까치발을 들고 냉큼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윤씨 할머니가 아랫목을 내어주신다. 아침나절에 지펴 놓은 불이 미지근히 남은 아랫목이다. 그나마 윗목은 불이 가지 않아 냉방이다. 송악면 월곡리 마을 입구에서 살고 있는 윤경순 할머니는 올해로 홀로 겨울을 맞은 지 20여년이 넘었다. 두터운 목화솜 이불을 덮고 윤씨 할머니, 복지사 오현옥씨와 마주 앉았다. 먼저 와 있던 오현옥 씨가 할머니 사는 이야기를 알뜰히 챙겨 읊어 준다. 윤씨 할머니는 자식들이 있지만 모두 형편이 넉넉지 못하다. 큰 아들이 조금씩 보태주는 용돈과 달마다 조금씩 나오는 노령연금으로 생활한다. 내년이면 여든을 넘기는 나이지만 가끔씩 이웃집 밭일을 도와주고 용돈을 벌기도 한다고.
날이라도 따뜻하면 좀 나으련만 눈 내리는 겨울에는 행여 미끄러운 길에 넘어져 다칠까봐 집안에만 꼼짝없이 들어 앉아 계신다. 다쳐서 아픈 것보다 병원비 보탤 자식들 걱정에서다.
윤씨 할머니네는 아직도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재래식이다. 큰 아들이 해다 준 나무로 불을 지펴 겨울을 보낸다.
“그래도 새벽이면 이내 추워요. 윗목은 말 할 것도 없고... 어젯밤에는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비닐이 결국 떨어져서 펄럭펄럭했어.”
창문에 붙여둔 바람막이 비닐 얘기다. 샘이 얕아 세탁기를 돌릴 수 없어 할머니는 겨울에도 손빨래를 한다. 허리랑 무릎이 아파 병원에 줄곧 다니는 데 영 시원치 않다. 빠져 버린 아랫니는 새로 해 넣을 방법이 없다.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월곡리가 수용된다는 거다. 황해경제자유구역으로 포함돼 월곡리 일부가 수용될 계획이기 때문이다. 소문만 무성할 뿐 이렇다 저렇다 뚜렷한 이야기가 없으니 의지할 곳이라곤 집 한 채가 전부인 할머니는 걱정이 태산이다.
“수용된다고 해서 벽지도 새로 못 바르고 살아요. 그냥 여기서 보내다 저 세상가야 하는데, 나가라고 하면 어디로 갈 지 막막하지.”
홀로 사는 외로움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래도 할머니는 이래저래 마음 써주는 이웃들이 있어 정부치고 산다고 했다. 시간날 적마다 들려 말동무해주는 현옥씨 같은 사람 덕에 하루하루 산다고.
“대학가면 혼자 남을 동생 걱정”
합덕읍 상흑리 우정재, 근재 형제
어머니는 동생 근재(15)가 태어난 지 100일이 좀 지났을 적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후로 형제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던 아버지마저 지병으로 곁을 떠났다. 그렇게 세상에 두 형제만 남은 지도 벌써 10년이다.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는 정재의 덤덤함이 도리어 더 짠하다.
자신이 생각할 때 특별한 사춘기가 없었던 것 같다는 정재. 10살 때부터 어린 동생을 돌보며 살았으니 방황할 틈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크게 힘든 일 없었다며 웃어 보이는 정재도 졸업식 같은 날이면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립다.
“졸업식 때 부모님이 오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긴 하죠. 그런 거 말고는 외롭다거나 힘든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동생이 있으니까 다른 데로 가지 않고 이렇게 살 수 있잖아요. 하나 밖에 없는 핏줄이니까 (소중하죠).”
적극적이고 활발한 정재와 달리 소극적인 근재는 형의 말에 고개를 파묻으며 웃어 보일 뿐이다. 근재에게 정재 형은 어떤 사람이냐니까 ‘좋아요’라는 말 뿐이다.
처음에 둘만 남게 됐을 때는 철없는 생각에 잔소리하는 부모님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책임감은 어린 정재에게 버거운 짐이었다.
“처음에는 우리 멋대로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어릴 적에요. 근데 시간이 지날 수록 엄마,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져서 혼자 감당하기가 어렵더라고요. 특히 동생이 잘 못해도 결국에는 제 책임이 되잖아요. 제가 하는 대로 동생이 그대로 따라할 테니, 나쁜 짓도 못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그 책임감이란 게 부담스럽기도 했단다. 그래도 정재는 동생이 없었다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나쁜 길로 가지 않았겠냐며 제법 대견한 소리를 한다.
올해 수능을 본 정재의 꿈은 국사 선생님이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정재의 걱정은 역시 동생 근재다. 자신이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고 나면 정재가 혼자 남게 되기 때문이다. 수줍음도 많고 소극적인 동생이 열아홉 근재의 가장 큰 걱정이다.
정재는 “동생이 지금 처럼만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줬으면 좋겠다”며 “얼굴도 모르는 좋은 분들 께 많은 것을 받으며 살았으니 여유가 되면 그 분들처럼 베풀고 나누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어려운 이웃위한 따뜻한 손길 필요
윤 씨 할머니나 정재 같은 어려운 이웃들을 만날 적마다 듣는 이야기는 “힘들어도 도와주는 이웃들이 있어서 살 힘이 난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난해 군에서 모금한 희망이웃돕기성금 대부분도 일반 주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마을회나 작은 단체,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기금이 12억원이 넘었다. 이중에 대기업이 기탁한 금액은 일부에 그쳤다.
군청 주민지원교육과 담당자는 “당진에 대기업이 많아 성금을 많이 내놓을 것 같지만 실제로 살펴보면 기업이 기탁한 금액은 소수고 지역주민들이 조금씩 보태어 내놓은 금액이 대부분”이라며 “대기업들의 성금 참여도는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군은 이달 초부터 내년 1월말까지 2개월동안 희망2010 이웃돕기성금 집중모금 기간으로 정하고 목표액 10억원 모금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직까지 모아진 금액은 목표액의 10%에 달하는 1억여원이다. 모아진 성금은 올 겨울뿐 아니라 내년 한 해 동안 어려운 이웃들이 따뜻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데 사용된다.
후원 및 성금 관련 문의
주민지원교육과 350-3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