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평면 초대리 이상범 할아버지는 56년째 일지를 쓴다.
60년 전 군대에서 행정병으로 복무 중이었을 때부터 부대 내 모든 일을 기록하는 일을 한 것이 버릇이 됐다. 제대후에도 3여년간 몸에 배인 습관은 떨칠 수가 없었고 현재까지 하루 동안의 일을 적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일지에는 특별한 것이 쓰여지는 것이 아니지만 할아버지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다. 음력과 양력을 먼저 기입하고 그날 있었던 일을 적는다. 예를 들어 고추모를 심은 날,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날, 삽교천으로 놀러를 간 날, 손주들이 놀러왔었던 날 등등. 줄이 그어져 있는 앞면에는 일지를 쓰고 뒷면이나 빈 공간에는 메모를 해둔다. 오늘 심은 고추모는 어느 품종이고 얼마를 얼마주고 샀는지, 쌀 수매가는 얼마였는지,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 후보별 표 수를 적어두기도 한다.
“군대에 있을 적에는 부대 일지는 물론 일급비밀도 내손으로 적히곤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제대하고 나서도 일지를 안 쓰면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는 거에요. 일기를 쓰면 구찮기도 하고 해서 간단하게 몇 줄 쓰는 것으로 불안감을 떨치기도 했죠.”
60년 전 썼던 일기는 제대할 때 가져온 군 용지를 가지고 10년이 넘게 적었다고 한다. 오래된 종이만의 내음과 함께 조금만 들춰도 곧 부스러질 것 같다.
“원래 군용지는 밖으로 가지고 와서 쓰면 안되는데 10년 가까이나 썼네. 지금쓰고 있는 일지 묶음은 2004년부터 쓴 거에요. 일지를 묶어두는 걸 군대에서 썼던 방식으로 종이 윗부분에 구멍 두 개를 내서 맨 윗장과 아랫장에 딱딱한 검은 종이판자를 붙여 엮는 방법을 쓰는게 우리 둘째아들이 마음에 안들었나봐요. 얼마 전에는 나랑 우리 안사람 사진 넣어서 예쁜 일지를 하나 만들어 왔더라고요.”
아들이 만들어온 일지 앞면은 이성범 할아버지와 정숙현 할머니의 사진이 박힌 스프링노트였다. 만들어 온지 얼마 안되서 이번년도는 그냥 쓰던 일지에 쓰고 내년부터 아들이 만든 일지에 쓰겠다고 하셨단다.
할아버지가 그간 쓰신 일지는 총 4권. 1956년부터 1982년, 1983년부터 1993년, 1994년부터 2004년, 2004년부터 현재까지다. 할아버지의 일지는 군대에서 쓴 일지까지 합하면 59년간을 써온 셈이다. 1951년부터 1953년까지의 일지는 군대에 두고 오신 것. 그 기록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재작년에는 기록에 의거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셨다며 자랑도 잊지 않으신다. 놀러가는 날이나 집 비우는 날에는 어떻게 하셨냐고 물었더니 “메모지에 써뒀다가 옮기거나 농사 짓는 사람이라 몇날 며칠씩은 집 비운 적이 없다”고 하신다.
옆에 있던 할머니는 할아버지 일지를 보고는 “같이 가끔 뒤져보면서 56년을 회고 하기도 한다”며 “할아버지가 ‘머리 해야겠다’고 하시며 일지에 석달 전에 머리 했다고 나오니까 머리할 때가 됐구나라는 걸 일지 보고 먼저 알려주시는게 재밌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본인의 일만 일지에 기록했던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 파마하신 날, 동네에서 있었던 일도 적어둔다. 신문에서 스크랩해 붙여둔 종이에는 금 1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 등 다양한 정보가 곳곳에 숨어 있다.
어제는 무엇을 쓰셨냐고 물었더니 일지의 뒷부분을 펼쳐보이신다. 빽빽한 글씨 속에 대개가 한자여서 알아보기 힘들어 하자 멋쩍어 하며 읽어주신다.
“어제 나랑 통화했잖아요. 우리집에 온다고. 그래서 ‘당진시대 기자와 통화 내일 오전 중 방문하기로’ 라고 적어놨죠. 앞으로도 글 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일지를 쓸 생각이에요. 오늘은 인터뷰했다고 써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