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작가인 리처드 도킨스의 책이 한국에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종교가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인간들은 종교가 필요없게 되었으니 종교인들은 착각에서 깨어나라고 설교를 한다.
도킨스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에서도 상당히 많은 팬들이 있다. 그래서 그의 책이 번역되면 판매부수가 상당하다.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이 사회에 건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기에 그의 책이 인기를 끄는 것 같다. 더구나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종교가 과학적이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서 종교를 수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에게 종교가 꼭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청소년들 뿐만이 아니라 성인들 사이에서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에게 도킨스의 논리는 합리성을 가지고 설득하기 때문에 그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믿게 된다. 영국의 방송에서 도킨스를 또 하나의 종교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도킨스의 신도들이다. 진화론을 주창하는 과학종교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종교는 과학종교에 관하여서 응답을 하여야 한다.
종교는 과학을 넘어선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종교의 행태는 과학을 너무나 무시하고 있다.
비과학적인 사람은 신앙이 깊다는 잘못된 신념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종교생활을 하면 자신이 원하는 욕구가 충족이 된다고 믿는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종교를 필요로 할 뿐인 종교인들이 많다.
이처럼 종교가 수단이 되면 그 종교는 타락을 하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종교를 수단화 시키는 본보기가 바로 정치인들이다.
종교는 아주 상식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상식을 무시하는 신앙의 행태가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 상식을 무시하는 종교지도자들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는 신도들도 많다.
그래서 신비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동이 카리스마로 둔갑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기에 종교가 현대인들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 종교가 과학을 넘어서는 진리의 길을 제시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은혜가 넘친다는 종교 집단을 보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믿음(faith)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크레도스(credos)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 말은 “내가 나의 마음을 누구에게 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의 마음을 신과 이웃에게 주는 행위가 믿음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고독과 불안함을 극복 할 수가 있다. 관계를 하지 못하면 존재의 불안함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
실존주의 철학자 케에르케고르는 인간이 우주에 던져진 불안한 존재라고 했다. 그 불안한 존재는 신 앞에서 단독자로 있을 때에 실존의 불안을 극복하게 된다고 했다. 인간은 왜 종교를 통해서 믿음을 가지려고 할까? 그것은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불안은 과학적인 지식이나 맘몬의 힘으로 해결을 할 수가 없다.
현대의 종교들은 인간의 실존의 불안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인간의 욕구를 충족 시켜주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신과 이웃에게 나의 마음을 진솔하게 나누는 믿음을 가질 때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화로워지고 아름답게 된다.
그러한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고 극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