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되면 교회에 오는 손님이 있다. 대나무 죽순과 오디를 따러 오는 손님들이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만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대나무가 번식을 해서 다 베어 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톱으로 내가 베기도 힘들다. 교회 진입로에 겨울눈이 오면 녹지가 않아서 일일이 눈을 치우는 고생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대나무가 죽순을 내어서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

교회 주변에 오래된 큰 뽕나무가 두 그루가 있다. 해마다 오디를 우수수 떨어뜨려준다. 새들이 와서 먼저 개시를 한다. 새들이 쪼아 먹으면서 오디를 많이 떨어뜨린다. 그물망을 깔아놓고는 줍는다. 오디를 주우면서 이야기를 한다. 올해에 뽕나무 한 그루는 병이 들었나 보다. 하얗게 병든 오디가 많다. 약을 줄 수도 없다. 가지를 쳐 주어야 할 것도 같다. 우리에게 해마다 좋은 것을 주지만 우리는 관리를 해주지 못하고 있다. 사람과의 만남은 중요시하지만 나무와의 만남은 인식하지도 못한다. 당연하다고 생각을 해서 그런가 보다.

자연은 사람에게 당연히 자신들의 몫을 한다. 사람들은 자연에게 당연히 제몫을 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자연을 이용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한국사회도 자연의 재앙을 맞이하고 있다. 미세먼지 띠가 상공에서 자리를 잡고 있고 원인은 한국 땅에서 생산이 되는 환경오염 때문이라고 한다. 그동안 매스컴에서는 중국의 핑계를 자주 댔었다. 북경의 환경오염을 보면서 중국정부는 왜 대책을 세우지 않아서 이웃나라에게 까지 피해를 주느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한국정부에 화를 내려고 하니 더 답답해진다. 원인으로 고등어구이라고 하지를 않나, 대책이랍시고 경유 값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서민들에게 세금 걷을 핑계거리가 생긴 것이다.

자연의 파괴는 19세기의 산업혁명으로 부터 시작이 되었다. 이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46억 년 쯤 되는 지구가 인간들의 몇 백 년 사용으로 병들어가고 있다. 인간의 파괴 능력은 대단하다. 결국에 지구를 떠나서 다른 행성으로 갈 수가 있을까? 아니면 지구보다 먼저 인간이 멸종을 할지는 예측할 수가 없다. 교회는 종말론을 내세워서 선교를 하기도 한다.

특히 이단들은 시한부 종말을 강조하면서 포교를 한다. 이단들의 교회가 부흥을 하는 이유는 불안을 확실하게 해결해 준다고 약속(사기성 약속)하기 때문이다. 이단의 교주들이 원하는 목적은 천국이 아니라 세속적인 권력과 돈이다. 그래서 정치 권력자들과 밀착한다. 신앙은 천국 보증으로 불안을 은폐 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직면 하면서 지금 여기에서의 천국을 이루어가는 삶이다.

인간문명이 진화 할수록 인간은 실존적인 불안이 증가하게 된다. 땅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범죄에는  실존적인 불안을 없애버리고 싶은 욕망과 관련이 있다. 현대인들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 불안이 없어질 것이라는 망상을 갖고 있다. 실존적인 불안은 소유가 아니라 생명(자연과 인간)들과의 건강한 관계 속에서 극복이 되어 행복함으로 승화된다. 신앙은 이렇게 불안을 승화시키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