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쉰 넘어 받는 두번째 석사학위
“이 논문은 노인대학 가족들의 것”
합덕대건노인대학 상임 김귀자
나이 50에 합덕대건노인대학 교학부장으로 상근하며 대학원 노인복지학과 수강.
직접 체험한 사례 중심으로 '평생교육의 실현 가능성' 연구한 논문발표.
20대에 받은 교육학 석사학위에 이어 두번째 학위.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교육학 석사, 교사경력 10년,
호스피스 봉사자, 노인학교 교사, 그리고 이제는 노인교육 전문가로
멈출 줄 모르는 그녀의 조용한 열정.
‘밝아지는 노인학생 표정 보며 평생교육의 밝은 미래 봅니다’
합덕대건노인대학의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학생들. 일일이 그분들과 눈을 맞추고 손을 맞잡으며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이 있다.
“아유, 어서 오세요. 바깥 날씨도 더운데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어요. 자, 어서 시원한 선풍기 옆으로 앉으세요.”
“할머닌 얼굴이 더 좋아지셨네요. 참 보기 좋아요.”
방학 중에 모처럼 학년모임이 열리는 날이라 학생들은 벌써 발걸음이 가벼웠지만 자신들을 맞이하는 이 환한 얼굴과 목소리에 싱글벙글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한평생 자식 키우느라, 논일 밭일 하느라 지치고 오그라들었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사회의 상식을 이어온 거름일진대 누가 이 어르신들의 지난 삶을 그처럼 제대로 알아주기나 했던가. 이분들의 삶의 가치를 충분히 존중하고 아낌없이 박스를 보내는 곳, 여성도 배움과 기쁨으로 살도록 기회와 용기를 주는 곳, 여전히 사랑하고 베풀며 살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곳, 그곳이 합덕대건노인대학이다.
이 미소와 목소리의 주인공은 노인대학 교학부장인 김귀자(57세)씨. 노인학생들의 교사이자 말동무이며 상담자, 그리고 어머니인 사람이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봉사자들과 도시락을 싸서 인근 무의탁노인에게 배달도 한다. 이 대학에서 병설로 운영하는 여성대학원의 교육프로그램 기획과 강사섭외 모두 서금구 학장님과 그녀의 일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정신적·육체적인 고통을 나누며 호스피스(임종간호) 봉사를 하다 그 일을 따라 합덕까지 오게 된 김씨는 95년 좥신뢰와 꿈과 사랑좦을 철학으로 한 대건노인대학과 덜컥 인연을 맺으며 눌러앉게 되었다.
‘인생이란 배움과 성장의 연속이며 죽는 순간까지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온 그녀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김씨가 최근 이 대건노인대학에 관련된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을 발표했다. 대건노인대학의 사례를 중심으로 노인교육의 장에서 평생교육 실현이 가능한가를 연구한 논문이다. 결론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평생교육의 이념 아래 교육목표가 분명하고 확고한 신념이 있는 사람이 노인대학을 운영하는 경우, 주거환경·학력에 관계없이 노인대학에 나오는 학생들의 삶의 질이 현저히 향상되며 그 지역문화수준도 더불어 향상된다'는 것이다.
“삶의 질이란 어떤 지표보다 만족감, 행복, 지아 존중감 같은 것으로 측정할 수 있는데 그것은 어르신들의 얼굴표정을 통해 가장 확실히 알 수 있어요. 내가 일하는 곳이라 쑥스럽긴 하지만 이곳을 가장 훌륭한 학교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분들의 표정이 점차 하루가 다르게 밝아지고 활력에 넘치기 때문이에요.”
김씨는 이 학교에 상근하기 시작한지 1년만인 97년 9월, 한서대 대학원 노인복지학과에 입학해 노인들을 교육하는 짬짬이 공부를 했다. 자신이 있는 곳, 자신이 일하는 분야를 좀더 넓은 안목으로, 좀더 긴 전망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이 학교의 창설자이며, 책임자인 서금구(66세) 학장님의 뜻이기도 했다.
2년만에 정식으로 대학원을 졸업하며 쓴 논문. 좥노인교육의 장에서 평생교육의 실현가능성 연구-합덕대건노인대학의 사례를 중심으로좦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노인대학 학생 170명과 각 반의 담임을 맡아 챙겨주고 있는 10여명의 자원봉사자,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주위 모든 사람들의 것이다.
오는 20일로 예정된 졸업식에는 학생들의 성화로 버스까지 대절할 예정.
두번째 쓴 대학원 졸업논문이요, 두번째 받는 석사학위지만 그래서 감회는 더 깊다. 이미 그녀는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적이 있다. 교사경력도 10년이다.
40대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친정부모님의 병수발을 들다 세사람의 죽음을 연달아 겪었던 고통과 좌절은 평화신문사가 주최한 문예공모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 속에 녹아있다.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도 힘들었다. 좌절에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자신을 찾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심리학회, 인성교육개발원 등에서 여는 교육과 죽음준비교육, 임종간호교육·활동에 매달린 시간도 수년이나 되었다.
시련에서 벗어났을 때 그녀의 평화는 그 시련만큼이나 깊었다.
삶을 되찾기 위해 35일간 단식을 한 뒤 씹었던 쌀 한톨의 맛과 눈물. 그것을 그녀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감사한다.
“글쎄, 뭐 자랑할만한 일인지 모르겠네? 아들 딸 잘 커줘서 걱정없고 이제 가진 것이 하나 없으니 그래서 걱정이 없고... 나야말로 이분들 덕에 하루하루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 걸.”
김태숙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