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교사들이 모일 기회가 있었다.

누군가 “요즘 좋은 학교의 기준이 뭔지 알아?”

“뭔데?”

“정시에 퇴근하는 학교야.”

웃으면서 동의들을 했지만 요즘 학교의 세태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아닐까.

보통 고등학교는 대학입시와 연결되면서 밤늦게까지 학교에 불이 켜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이제는 중학교, 초등학교까지 밤에 불이 켜지더니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 학교의 모든 것이 되어 버렸다.

일제고사를 잘 보기 위해서는 불법도 탈법도 모두 용인되고 학생들을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들어 버리는 우리의 모습이 한심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요즘 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건 다름 아닌 2009개정교육과정 문제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이 교육과정의 핵심 내용을 보면 학생들에게 한 학기에 8개 이상의 과목을 배울 수 없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과목 집중이수제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의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배우는 교과목을 최소화한다는 나름의 명분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문제다. 우선 8과목으로 교과목을 축소하다 보니 국어, 영어, 수학을 제외한 과목은 학년과 상관없이 학기별로 집중이수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한 학기에 한 학년 교과서 전체를 배우는 사태가 벌어진다. 과연 교과서 반을 시험 준비하는 상황이 학생의 사교육비 절감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궁금한 대목이다.

또한 집중이수제가 시행되면 담임의 문제도 불거지게 된다. 1학기 동안 자기 반에 매일 들어가다가 2학기가 되면 한 시간도 수업을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한 것이다. 또 학생이 전학을 갔다고 치자. 전학가기 전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은 과목이 전학 가는 학교에서 이미 집중 이수로 배웠다면 3년 동안 그 과목 수업을 받지 않는 사태도 벌어진다.

물론 이를 막기 위해 방학을 이용한 특별 과정을 만들 가능성도 있지만 이 또한 우스워 보인다. 또 충남처럼 고입시험이 있는 상황에서 1, 2학년 때 배우고 3학년 때 배우지 않는 과목에 대해서는 방과 후 학교로 보충해 주란다. 게다가 더 기막힌 것은 내년부터 교육과정이 시행되는데 교과서는 3년 뒤인 2014년에야 나온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졸속인가? 우리나라의 초, 중, 고등학교 전체 학생들이 배우는 방향을 정하는 교육과정이 이리도 책임 없이, 이리도 대안 없이 시행되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해 보인다.

교사와 학생은 실험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충분히 고민하고 찬찬히 검토해서 학교에서 시행되는데 부족하고 문제 있는 것이 무엇인지, 2009 교육과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조정해야 하는지 확인하고 시행해도 늦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당장 시행해야 하고, 문제가 나타나면 그때그때 조정하잔다. 이 2009개정교육과정 진행을 보면서 4대강 사업이 쌍둥이처럼 닮은 모습으로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두 사업 다 옳다고 느끼면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다 무지하거나 반대를 위해 반대를 하는 사람이고, 과정에서 불법과 탈법이 이루어져도 결과가 좋은 것이라 괜찮다고 생각하는 현 정부의 황당한 궤변으로 다가온다. 또한 둘 다 한번 변경되면 돌이키기 어려운 것도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