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도 불꺼진 세상에 홀로 사는 시각장애인의
눈대신 손과 귀로 밭농사 짓기
석문면 삼봉리 김정희
육순 다 된 나이에 컴퓨터 수강
‘점자’ 배우는 장애인의 선생노릇까지
날에 까막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엔 해도 달도 없고 언제나 깜깜하였다. 까막나라 임금님은 어둠 속에 백성들이 아우성을 치자 어느날 불개를 시켜 이웃나라 해를 훔쳐오게 하였다. 그러나 해가 너무 뜨거워 어떤 개도 해를 물어오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임금님은 이번에는 이웃나라의 달을 훔쳐오도록 개를 보냈다. 그러나 어떤 개를 보내도 얼음보다 차가운 달을 물어오지 못했다.
오히려 이것이 화근이 되어 이웃나라와 큰 싸움이 벌어졌다. 다행히 두나라는 싸움 끝에 이런 평화조약을 맺었다. 해와 달 중 하나를 반나절씩 가지고 있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어둠도 나눠 가지기로 하였다. 마침 이웃나라도 깜깜한 어둠이 없어 백성들이 잠과 휴식을 취하지 못해 심히 난폭해져 있었다.
이리하여 두나라는 모두 반나절은 해와 함께, 반나절은 달과 함께 낮과 밤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 다만 그때 불개가 물었던 자국 때문에 아직도 해와 달에는 까만 얼룩이 남아있다.좦
꼬마들의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까막나라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빛의 고마움을 모른다. 그리고 어둠과 함께 찾아오는 휴식과 고요 속에 느껴지는 생명의 섬세한 움직임. 그런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평생을 혼자 어둔 세계에서 살아온 시각장애인 김정희(56세)씨는 빛의 고마움을 안다. 한평생 빛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시력이 아주 약했던 어린시절에 보았던 이 세상의 초록빛과 노란 꽃빛, 가지꽃의 연한 보라빛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인다. 지금 그 기억은 아득하기만 하다.
10년전, 김씨가 두려움을 무릅쓴 채 호미를 쥐고 밭이랑에 서게 된 것도, 땅에서 나는 빛깔있는 것들의 순함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사람같지 않아서 자신을 장님이라고 해꼬지하지는 않을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뜬 뒤라 성치 않은 몸으로 해보자고 덤빌 수 있는 일도 남편이 하던 이 밭농사 뿐이었다. 반듯이 잘 자랐지만 그때 4남매를 데리고 살기가 얼마나 어려웠던지 지금도 말보다 눈물이 앞선다.
옆집 아주머니의 살가운 잔소리에 마지못해 밥술을 억지로 떠넣고 나니 오후 3시30분. 김씨는 다른 날보다 좀더 서둘러 문앞에 있는 밭언저리로 나간다. 봄과 여름내 잘 자라준 콩과 고구마를 위해 김을 매줘야 한다. 조심조심 아랫고랑을 내려서는 김씨는 머리 속에 꼭 이 밭 그대로 그림을 그려넣은 사람같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콩가지와 잡풀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모르겠다.
“손을 대보면 알아요. 이 손이 용케 그걸 알아요.”
그래서 남들처럼 장갑을 끼지도 못한다. 김씨의 웃는 모습이 수줍은 분꽃같다. 얼마전엔 실하게 열린 고추을 땄다. 하지만 김씨의 손도 붉게 익은 고추를 가려낼 재간은 없었다. 그때만은 퇴근한 막내딸의 손을 빌었다.
전국에 생난리를 부른 이번 폭우로 김씨네 밭 콩가지도 적지않게 쓰러졌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건 없다. 또 걱정한들 무슨 소용인가.
김정희씨의 삶에 ‘좌절’같은 건 없어 보인다. 쓰러졌다가도 매번 일어서는 오뚜기다. 대신 눈이 되어주던 남편이 죽었을 때, 믿거니 했던 이웃에게 속아 자기땅이 엉뚱하게 팔려 나갔을 때,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고 울기만 하다가도 그녀는 끝내 일어서곤 했다.
김정희씨의 방에는 컴퓨터도 있고 다 읽은 점자책도 수없이 많다. 그녀는 타인과의 교류를, 세상과의 교류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말씀은 지금도 곧잘 하지만 문자로, 문서로도 자기가 할 말은 기록하고 교환하고 싶다.
그래서 97년에는 4개월간이나 점자교육을 받았다. 작년에는 2주간 특수컴퓨터를 배워 더듬더듬 자판을 칠 수도 있다. 좥... 문화공간 ...좦과 같은 말을 점자책에서 쉽게 찾아내 읽을 정도로 세상에 귀가 트였다. 라디오, TV뉴스도 그녀는 열심히 듣는다.
“다 읽은 점자책은 워낙 깨끗해서 재활용하기도 좋을텐데 요즘은 통 가져가는 사람도 없네요.”
그녀는 이런 걱정까지 한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그녀는 이렇게 세상 한가운데에 서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면서.
김씨는 자신이 사용하는 컴퓨터 스캐너가 외부에서 오는 문서를 소리내어 읽어줄 때까지, 그리고 고장난 컴퓨터 프로그램을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을 때까지 컴퓨터를 배우고 싶다. 막내딸이 시집을 가도, 아니 그 어떤 상황에 처해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혼자서도 너끈히 증거할 수 있도록 도전하고 또 도전할 생각이다. 비록 몸은 작고 아프고 나이까지 들었지만 그녀의 용기와 투지는 얼마만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김태숙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