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일철이 돌아왔다. 황금들판, 수확의 기쁨 그리고 농부들의 넉넉한 웃음. 이런 단어들이 이제는 너무나 낯선 것이 오늘날 농촌의 모습이다. 쌀값 폭락, 쌀 재고량 급증 그리고 쌀 생산비를 보장하라는 농민들의 외침. 이제 농촌의 가을 풍경은 안타깝지만 정겨움보다는 걱정과 한탄 그리고 울분만이 남아 있다.
20년 전 쌀값과 같다는 오늘날의 쌀값, 쌀이 넘쳐나 사람이 먹기 위해 농부가 피땀 흘려 생산한 쌀을 짐승들 사료로 주자는 주장 등을 접할 때면 과연 이 땅의 농사꾼들은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에 한 농민은 벼를 생매장했다. 아직 푸른 벼 포기를 세워둔 채 덤프트럭이 들어와 흙으로 덮어버리는 참으로 참혹한 광경이었다. 다시는 논에 벼를 심지 않겠다는 분노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언제쯤에야 농민들이 이런 참혹한 일을 하지 않을까. 참으로 서글픔이 밀려오는 가을이다.
이제 수년째 되풀이되고 있는 쌀값 폭락이라는 쌀 대란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쌀 재고량이 예년에 2배인 140만톤을 초과해 창고에는 재고미가 꽉 차 있어 올해 추곡 수매를 정상적으로 할 수 없을 지경이고 추곡 수매 준비를 위해 창고를 비워야 하는 농협은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 사가는 사람만 있으면 가격에 관계없이 쌀을 처분하고 있는 현실을 이제는 극복해야 한다.
얼마 전 정부는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취임 2일만에 ‘쌀값 안정·쌀 수급균형 대책’을 발표했다.
연간 쌀 예상수요 426만톤 초과 전량 시장격리, 구곡재고 50만톤 긴급처분, 벼 재배면적 감축 등을 골자로 하는 내용으로 과거의 대책보다는 획기적이란 평이지만 실효성이라는 측면과 농지전용 규제완화, 인도적 대북 쌀 지원 제외, 근본적 농가소득향상대책 부족 등에서 우려와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 예상 쌀소비량 426만 톤 이상 생산되는 물량을 전부 매입한다는 쌀 대책을 내놓았지만 폭락한 쌀값을 회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농촌경제연구원에서조차 아주 긍정적으로 전망해서 정부의 이번 대책이 잘 시행된다해도 작년 수확기 대비 2% 정도의 가격상승효과밖에 없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쌀 재고량이 적정량의 2배를 초과하는 상황을 해소하지 않는 한 수확기 쌀값의 폭락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쌀값의 폭락을 막기 위해서는 완전한 시장 격리가 절실하다.
이런 측면에서 인도적 차원의 대북 쌀 지원이야말로 쌀값 폭락을 막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인도적 차원의 대북 쌀 지원 쟁점과 기대효과’라는 보고서 내용을 보면 북한의 심각한 재해상황을 고려해 대북 쌀 지원을 재개해 인도적 차원의 명분을 쌓고 국내 쌀 재고량을 줄임으로써 쌀값 안정, 쌀 보관비용 절감, 농가소득 안정화 등의 경제적 효과와 남북경제협력의 경제외적 효과도 얻는 동시에 핵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데 중지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쌀의 완전시장 격리를 위한 대북 쌀 지원 재개야말로 쌀값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들을 위한 가장 합리적인 대책일 뿐 아니라 수해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우리의 따뜻한 동포애를 전달하여 다시금 남북이 상생과 공영의 길로 갈 수 있는 작은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
이제 얼마 있으면 추석이다. 냉해에 폭염에 잦은 장대비에 그리고 태풍에 올해처럼 농사짓기 쉽지 않은 해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농민들은 억척같이 들녘에서 소중한 쌀 한 톨을 얻기 위해 피땀 흘리며 이 땅을 지켜왔다.
이번 추석에는 대북 쌀지원 재개라는 희소식이 올 한 해 피땀 흘리며 농사지은 농민들에게 큰 선물로 배달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