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남길만한 것이 없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반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과 함께 뒤를 돌아보고 나를 다잡아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번째 사진은 1984년에 찍은 사진으로 60년대 붐이 일었다가 침체기를 걷던 4H 활동이 80년대 초 다시한번 붐을 일던 시기의 사진이다(왼쪽 밑에서 두번째 줄). 나 역시 4H활동에 참여했었고 이 사진들 중에는 당진낙농축산업협동조합 이경용 조합장의 모습도 있다.
사진을 찍은 장소는 삽교천 내의 기념탑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삽교천 역시 지금의 모습과 당시의 모습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당시는 삽교천에 횟집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던 시기였다.
두번째 사진은 호서고등학교 유도부원들과 졸업 사진으로 찍은 사진이다(왼쪽 뒤 두번째). 오른쪽 우측끝이 신성대학 유영창 교수, 가운데가 담당체육 선생님이자 유도 담당이셨던 김영석 선생님이다. 또 가장 뒷 줄의 왼쪽 끝에 서있는 학생이 현 당진군 유도회 이재욱 회장이다.
내가 입학하던 해에 호서고에서는 유도부가 창단해 우리가 처음으로 배출된 호서고 유도부 졸업생이다.
세번째 사진은 당시 국민학교 도서관에서 새마을 문고 활동을 하던 모습이다.
1985년 순성면 봉소3리에 1500여권의 서적을 들여 놓고 방학 동안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충효특별학교 강사로 활동했었다.
당시의 아이들이 이제는 성인이 됐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월이 빠르게 지났다.
마지막 사진은 아내와 함께 1985년 공주 무령왕릉에서 찍은 사진으로 알고 있다.
1985년에 결혼한 우리는 당시 깨가 쏟아지던 신혼 시절이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인근 지역에 아내와 함께 들렸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려 찍은 사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