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農)자의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曲(곡, 田의 변형)과 辰(신, 조개가 껍떼기에서 발을 내밀고 있는 모양)을 합하여 만든 한자로 농사철이 되어 밭에 나가 농사를 짓는다는 뜻을 나타낸다. 농업은 주로 농촌에서 토지를 이용하여 사람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길러 생산물을 얻어내는 활동을 말하며, 농업을 뜻하는 영어 agriculture의 어원은 라틴어의 agri(흙)와 culture(경작)를 합친 말로서 땅을 일구어 작물을 가꾼다는 뜻이다.
과거 ‘農者天下之大本也’라. 농업(인)이 세상의 바탕이요, 하늘아래의 근본이라 회자되었건만 농업인 자신들은 물론이려니와 농업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또한 그리 호의적이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농업은 생명! 농촌은 미래!’, ‘도시는 꽃이요, 농촌은 뿌리’라는 말도 있거니와 새삼스레 식량안보니 생태계보전이니 홍수조절이니하는 농업의 다원적기능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는다손치더라도 요즘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녹색성장 저탄소운동’ 차원에서만 본대도 타산업과는 달리 농업은 공기정화능력이라던지 이산화탄소저감 등의 효과를 가져온다.
산업혁명 이후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는 막대한 에너지소비를 야기시켰고 이로 인해 환경오염은 물론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량을 급격히 증가시켜 지구에 도달한 태양에너지를 가두어 두는 온실효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구온난화’라는 커다란 재앙을 안겨주기에 이르렀다. 반면 농업은 작물재배과정에서 광합성작용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소재로 하여 유기물을 합성하는 한편 산소를 배출하므로써 지구온난화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적지않은 순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업의 비중이 국민총생산(GDP)의 2.2%에 불과하다하여 경시하는 풍조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식량전쟁의 역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식량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따라서 식량쟁탈전을 두고 총성없는 전쟁이라 하지 않는가?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에서야 너나 할 것없이 배고픔의 고통을 절실히 알지만 요즘 세대는 잘 모른다. “옛날에는 밥이 없어 굶기를 밥먹듯이 했다”고 하면 “왜 굶어? 바보같이… 라면이라도 끓여 먹지!” 라고 하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벌어지니 말이다.
농촌인구의 고령화뿐만 아니라 멈출줄 모르고 감소하는 농지하며 뒷걸음질치는 식량자급률, 그리고 농가소득의 감소와 복지인프라의 부족 등등. 다행히 귀농인구가 점차 늘어나고는 있다지만 만일 이(탈)농인구가 이를 상쇄해 ‘농업인 없는 농촌’이 현실화된다면 어찌될 것인가? “자동차, 핸드폰 팔아 쌀 사먹으면 되지!” 하는 류의 이야기는 실로 위험천만한 발상이며 근시안적인 견해다. 식량주권이 없으면 식민지(경제속국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흐름을 간과한 안이하고 단순한 생각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애국자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농업인이라 말하겠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또한 각자의 영역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모두 다 애국자이지만 녹색혁명의 주체요 백색혁명을 이끌고 이 나라 모든이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분들이 바로 농업인이지 않은가?
‘어머니’라는 말과 함께 가슴 찡하게 다가오는 말이 ‘고향’이라던가? 사실 따지고 보면 농촌이 고향 아닌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농촌을, 그리고 또 농촌문제를 그저 남의 일이라 외면할 수 없는 처지가 아니지 않겠는가? 우리 다시금 ‘농업·농촌·농업인’의 현실과 미래를 헤아리고 보둠는 혜안을 가져보자. 우리를 지켜주는 생명산업으로서 그 중요성을 인식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농업·농촌·농업인이 처해있는 현실에 대해 보다 넓은 이해의 폭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겠나 싶어 몇 자 적어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