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떨어져 썩는 밀알이 되고 싶다”
신평면 매산리 최윤길
염습봉사에 나선지 20년
아내의 완강한 반대도 눈녹듯 사라지고
신평면 매산리에 사는 최윤길(48세)씨를 일컬어 주위 사람들은 ‘남들이 꺼리는 일을 20여년간이나 해온 대단한 이’라고 소개한다. 총각 때부터 단 한푼의 댓가를 받지 않고 염습봉사를 해왔다는 사람. 싸늘히 식은 시신을 만지며 수의를 입히고 입관시키는 일은 분명 보통 사람은 엄두를 내지 못할 일임에 틀림이 없다.
최씨를 처음 만났을 때 왜 그런 힘든 일을 하게 됐느냐고 묻자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 명료했다.
“저는 신앙인 입니다.”
신앙인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몰랐다.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평범한 어르신들부터 병고에 시달리다 고통의 삶을 마친 환자들, 어른들의 실수로 짧은 생을 마쳐야 했던 어린아이, 뱃사고로 수장됐던 어부들에 이르기까지 삶이 다양한 것 만큼 다양한 사연으로 그 삶을 마친 망자들의 마지막 몸단장을 해주는 일을 한푼의 댓가없이 해왔다는 것은 신앙의 힘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듯 싶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가 염습봉사에 나서게 된 것은 객지에서의 오랜 방랑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부터였다. 스물여섯살 되던 해. 밖으로 나돌면서 ‘몹쓸 짓’을 많이 했기에 이웃에게 베풂으로써 속죄하고 거듭나고자 염습을 하게 됐다는 게 최씨가 ‘신앙인이기 때문에’라는 이유 외에 쑥쓰럽다는 표정으로 덧붙인 배경이었다.
다행히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이 있어(최씨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염습을 해온 분들이었다) 염습에 나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신앙의 힘으로 해온 일이었다지만 인간적인 고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해 겨울, 매산리 앞바다에서 뱃사고로 4명의 어부가 빠져 죽은 사건이 있었다. 3명은 다행히 곧바로 떠올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는데 나머지 1명은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떠올랐다. 부패할대로 부패한 시신을 거둬들여 최씨는 대병짜리 소주를 부어가며 일일이 소독을 하고 수의를 입혀 편안한 저승길로 보냈다.
염을 하며 그가 가장 안타까움을 느낄 때는 어른들의 사소한 부주의로 죄없는 어린생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였다. 갓 돌을 넘긴 아기나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서너살박이 어린 천사들의 시신은 세상을 향해 울음 울듯 쉽게 차가와지기도, 굳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애환말고도 정작 그가 가장 어려웠던 것은 아내의 완강한 반대였다. 결혼 당시만 해도 최씨가 염을 하는 줄 몰랐던 아내 윤순애씨는 나중에서야 이 사실을 알고 기겁을 했다고 한다. 염을 하고 온 날은 곁에 오지도 못하게 했고 방에 들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염할 때 남편이 입었던 옷가지를 전부 불에 태워버린 적도 있을 정도였다.
시신을 바라보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아내에게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최씨는 그런 아내를 나무라지 않았다. 언젠가는 이해하겠지, 자신도 세상을 떠나면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마지막 몸단장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날이 오겠지 하며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 윤씨가 남편의 일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격려자로 나서게 된 계기가 있었다.
윤씨는 6년전 동맥뇌출혈로 혼수상태에 빠지게 됐다. ‘어차피 살 가망이 없으니 아쉽더라도 돈 버리지 말고 집으로 데리고 가라’는 병원쪽의 청천벽력같은 선고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남편 최씨는 꺼져가는 아내의 생명을 차마 놓을 수 없었다. 평생을 누워살아도 좋으니 수술받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최씨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을까. 두번의 뇌수술 끝에 아내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후로 아내 윤씨는 남편의 일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생사를 오가며 아내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죽음이 결국 삶의 바로 이면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내를 살린 것은 남편 최씨의 생명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었다. 최씨는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으면서 산다는 것, 살아서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의 소중함을 이미 알고 있었다.
유족들 중에는 최씨에게 가끔 봉투를 건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사코 거부해 온 최씨이지만 더 좋은 일에 쓰면 되지 않겠느냐는 주위의 권유로 몇번 수고비를 받은 적이 있었다. 40만원 남짓한 그 돈을 최씨는 통장에 고스란히 모아두고 있다. 조금 더 모아지면 그는 어려운 이웃돕기나 더 뜻있는 일에 쓸 계획이라고 한다.
최씨는 신평천주교회 신도들의 봉사단체인 ‘밀알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땅에 떨어져 썩는 하나의 밀알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썩지 않고 혼자서 싹을 틔우는 밀알 보다 썩어서 비옥한 농토를 만들어주는 그런 밀알이 되고 싶단다. 어려운 일일수록 자신이 먼저 뛰어듦으로써 남도 함께 따라올 수 있게 하는, 그리하여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 최씨의 삶의 자세에는 경건함마저 배어있는 듯했다.
최씨는 서해중앙신협에서 지역환원사업의 하나로 최근 시작한 장제사업에 관리자로 뛰어들게 됐다. 그러나 염습은 여전히 무료봉사이다. 최씨는 자신의 직업에도 봉사의 의미를 가미하고자 한다. 조합원과 지역주민들이 검소하고 부담없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하는 것, 이웃이 어려울 때 늘 두팔 걷고 나섰던 최씨의 또다른 봉사인생이 기대된다.
이명자 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