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등기소 앞에 새 변호사 사무실이 생겼다. 2층에 자리잡은 이 사무실의 주인은 이병선(36세) 변호사.
올 3월 사무실을 마련한 뒤 이 변호사는 일도 해가며 이것 저것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도 해가며 12월에 접어든 지난주 토요일에야 개업식을 가졌다. 평소 왁자하게 소문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개업식은 할 생각도 없었는데 막상 고향땅을 밟고나니 자신을 알고 있고 보살펴주신 많은 고향 어른들께 예의가 아니었던 것이다.
합덕에서 태어나 합덕초등, 합덕중을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는 천안에서, 대학은 서울에서 졸업했다. 동국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합격후 연수를 마치자 곧 고향으로 내려왔다. 고향을 떠난지 20년만의 일이었다.
아, 물론 그 사이에 다른 이력이 있다. ‘농사방위’ 이력이다. 대학재학 중에 부친상을 당한 그는 학교를 휴학하고 군복무를 하며 혼자되신 어머님을 도와 열심히 농사를 거들었다. 어머니 한상복(70세) 여사는 아직도 합덕읍 신촌리에 살고 계시다.
이 변호사는 자신이 변호사직을 선택한 것이 거창한 꿈 때문이 아니라 ‘소박한 직업선택’이었음을 솔직히 얘기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자기 직업에 대한 철학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투철한 직업의식과 서비스 정신은 지역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좥나홀로 소송좦이라는 게 있어요. 굳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아도 되는 소송을 말하죠. 그런 소송들이 수없이 많은데 변호사는 그런 소송자들의 법률적 도우미 역할을 할 수 있죠.”
그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다. 좀 안정이 되면 이런 꿈을 펼 수 있는 곳은 작은 도시, 고향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도시에서의 경쟁이란 자칫 무리한 변호사 선임과 선임료 경쟁이 될 것만 같았다. 올초 천안에서 개업했다가 한달만에 철수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것도 그 때문이다.
“법적인 문제로 곤경에 처한 사람은 누구든, 언제든 찾아와 상의할 수 있는 서민적이고 정직한 변호사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는 하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 한마디가 그것.
좥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사람의 할일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좦
늦깎이로 작년에 결혼한 아내 정윤경(28세)씨와 딸 지윤(1세)이도 내년이면 이곳 당진으로 오고, 작년에 시작한 대학원 과정도 마치고 나면 이제 다시 온전한 당진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퍽 수월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