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디가 진한 붉은색으로 익어 간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오디를 쳐다보니 입안에 침이 고인다. 나도 어릴 적 내 부모님처럼 가장 큼직하고 맛있게 익은 오디를 몇 개 따서 내 아이의 작은 손바닥에 올려 놓았다.
“엄마가 어릴 적에 먹었던 오디란다.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자, 아~”
“에이! 엄마 뭐가 이렇게 생겼어. 벌레 같아.”
아이는 보기에 맛있어 보이지 않을 것 같다며 먹어보기도 전에 얼굴을 찡그린다.
“에이~ 엄마 맛없어.”
“아닌데, 정말 맛있는데...”
나도 몇 개를 따서 입안에 넣어 보았다.
그런데, 맛이 없다. 내가 어릴 적 오디가 채 익기도 전에 먹었을 때도 이런 맛이 아니었다. 분명 내 아이의 말처럼 그때 먹었던 그 맛있고, 달달한 이 세상 그 어느 열매와도 비교할 수 없이 맛있던 그 오디의 맛이 아니었다.
어릴적 이맘때쯤이면 지천에 우리들의 먹을거리가 풍성했다. 낮은 언덕쯤에 산딸기, 우리집에는 없는 옆집, 뒷집 할머니 댁의 물앵두, 보리앵두, 주인이 없는 버찌며, 오디까지.
하지만 이제는 계절과 상관없는 과일들이 우리 아이들의 간식으로 대체되고 있다. 내가 내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 사실은 오디의 맛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나의 어릴적 추억을 함께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디를 먹을 때면 어릴적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오디를 따 먹으며 옷에 물이 들어 웃고, 장난하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가끔은 높은 곳에 빨갛게 익은 오디를 욕심내기 위해 올라가다 다리가 오디나무에 쫄리는 아픔까지도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그때는 참 오디가 맛있고, 또 정말 달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때의 오디 맛을 기억하고 있다.
욕심이 난다. 내 아이가 나처럼 오디 맛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친구들과 놀때면 어느덧 동네에는 여기저기 저녁 밥짓는 연기가 피어 올랐다. 저 멀리 어딘가 쯤에서 그만 놀고 들어와 저녁 먹으라던 엄마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맘때쯤이면 낮이 길어져 놀 시간이 많아 덥고, 땀나는 것 쯤은 아무상관 없이 그저 친구들과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노는 시간이 더 많이 주어진 것이 마냥 신나고 즐겁기만 했던 것 같다.
내 아이도 어른이 되어 오디를 떠올릴 때 내가 느꼈던 맛을 느꼈으면 좋겠다. 아니 나처럼 친구들과의 기억이 함께한 맛이 아닐지라도 이 길을 지나가고, 이 오디나무를 볼 때마다 엄마가 한손 가득 따 주었던 오디를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선물해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