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여보, 태준이가 또 내 찌찌를 깨물었어.”
“.............”
“자는 거야? 여보!”
조금은 익숙해 질 때도 됐는데 아직도 아기를 키우는 일은 내게는 벅찬 일인듯 하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주장이 그러하듯 나 역시 남편의 도움이 절실하다. 화장실에 갈 때도 아이를 업고 간다거나, 끼니 때를 놓쳐 밥을 먹는 일은 다반사이다.
남편은 남편 나름의 이유가 있다. 회사일로 바쁘고, 피곤하며, 다른 것은 다 도와줘도 모유수유야 온전한 엄마의 몫 아니냐는 것이다. 그야 그렇지만 아기가 새벽에 깨서 칭얼댈 때면 정말 이렇게 살기 위해 내가 결혼이란 것을 하고, 아기를 낳았나 싶다. 기껏해 봐야 1년 반 남짓, 새로운 가족이 하나 탄생한 것뿐인데, 이 갈등은 구석기 시대부터 있었던 것 같다. 겨우 2년도 못되서 앓는 소릴 한다고 비웃겠지만, 당사자에겐 심각한 문제다.
요즘에야 귀하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고 곱게 자리지 않은 자식이 어딧으랴. 나도 남편도 마찬가지인데, 문제는 서로를 얼마나 배려하느냐다. 처음 결혼식을 올리고 난 직후에는 얼마나 조심을 했는지, 혹여 아침이 늦어 회사에 늦게 출근 할까봐 4시부터 시간마다 깨기도 하고, 잘 다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서 젤 잘났다고 칭찬도 했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혼자 저녁 먹는 내가 안쓰러워 저녁 때 오는 전화는 받지도 않고 , 김치찌개뿐이던 저녁상도 맛있다며 고봉으로 밥을 먹곤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오붓한 시간보다는 짜증나고 지친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아이만 신경써도 하루가 훌쩍 지나버리기 일쑤고, 나와 아이에게 신경이 집중되었던 남편도 조금씩 바깥일을 살피고 회사일로 바쁘게 된 것이다.
아침 혼자 챙겨먹는 남편을 보면서 짠하고 미안한 마음보다 다행스럽고 자연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내가 변하긴 변한 것 같다.
연애시절 인사처럼 달고 살았던 사랑한다는 말을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남편도 짜증만 늘어버린 나를 보며 연애적 생각이 날 것도 같다.
학교 후배 하나가 가족이란 좋아할 수는 없어도 어쩔 수 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말을 했었다. 가족들 때문에 조금 힘들었던 시기여서 그 말이 공감되고, 살짝 눈물도 흘렸던 것 같다.나에게 남편이 남편에게 내가 좋아할 수는 없는 존재가 되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해나 배려 없는 생활이 계속되어서 서로에게 지쳐버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걱정이 생기는 것을 보면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바닥나지는 않은 듯하다.
유명한 노랫말처럼 함께 먹을 밥을 지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의 가치를 내가 잠시 잊었던 것 같다.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찌찌를 깨물어 피가 나도 다시 물리고 싶은 소중한 아이는 나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많은 가족이 해마다 탄생한다. 때로는 그 수명을 다 하지 못하고 산산히 깨지기도 한다. 누구인들 가족이 부서지길 바라겠냐는, 아무런 노력 없이 부서지지 않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며 다짐하건데, 당장 오늘, 나부터 노력해야겠다. 천하무적 슈퍼우먼이 돼서 육아와 살림, 내조까지 완벽하게 하겠다는 호언장담은 못 하더라도, 남편에게 조금은 부드러운 아내가 되겠다고 약속한다. 가을은 쓸쓸함으로 느끼기 전에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따스한 햇살이 사랑스럽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어야 겠다.
인디언 부족의 표현 중에 ‘I KIN YOU.' 가 있다고 한다. 직역하면 '나는 당신을 이해합니다'이다.
이제 그에게 내가 해주어야 할 말인 것 같다. 그의 말대로 가족끼리 사랑한다는 말은 좀 쑥스럽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