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배추파동 현장을 가다

재배량 조사, 계약재배 절실

지난 19일 송악읍 가학리, 묵직하게 내려앉은 하늘, 트랙터 시동 거는 소리가 적막한 초겨울 농촌 마을을 요란하게 울린다. ‘왱~!’ 트랙터는 배추밭을 거침없이 가로질렀다. 노랗게 익은 배추 속이 그대로 드러났다. 커다란 트랙터 바퀴에 배추가 통째로 뽑히거나 제멋대로 찢겼다. 수확을 앞둔 배추를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는 이는 지난여름 배추모를 심고 여태껏 가꾼 밭주인이다.

몇 해 전부터 수확을 앞둔 농산물을 갈아엎는 일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부에서는 ‘농산물 수급 안정’이라는 명목이 붙었지만 자식처럼 키워낸 농산물을 제 손으로 갈아엎는다는 건 농부에게 몹쓸 일이다.

“보고 있으면 속이 상해서 집에 들어가 내다보지도 않았어요. 이 배추가 어떤 배추인 줄 아세요? 가을에 가물었을 때 사람을 사서 일일이 물을 길어다 하나하나 뿌려주면서 키운 배추예요. 배추 심기 전에 심었던 봄무도 비가 하도 많이 와서 다 갈아엎었죠. 무 갈아엎고 심은 배추인데 또 갈아엎어야 하니...”

조영금 씨는 노랗게 꽉 들어찬 배추 속을 들여다보며 까맣게 타들어가는 심정을 토로했다. 조 씨는 올해 심은 배추 7만포기 중 3만포기가 넘는 양을 모두 산지 폐기했다.

올해 당진에서 무·배추를 산지 폐기한 농가는 모두 124농가로 폐기량은 배추 1,112톤, 무 52톤에 달한다. 그나마도 계약재배가 이뤄진 합덕·송악·대호지·신평 지역 농가만이 산지 폐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농협과 계약재배를 하지 않은 농가는 판로를 직접 찾다 팔지 못하면 그대로 밭에서 썩혀 버려야 한다. 군내에는 지난해에 비해 배추는 10%, 무는 6%가량 재배면적이 늘어나 배추 517ha, 무 459ha가 재배됐다.

배추 도매가격이 포기당 천원선 이하로 급락함에 따라 배추값 안정을 위해 당진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산지 폐기가 진행되고 있다. 배추 산지 폐기는 가을 무·배추 재배면적이 전국적으로 크게 늘어나고 기상 여건도 좋아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배추값이 크게 떨어지자 추진되고 있다.

올해는 10월 초순경 도매상들이 직접 농가를 돌며 배추를 사전 거래하는 일명 ‘밭떼기’의 가격이 포기당 200~300원대로 형성될 만큼 무·배추의 가격이 폭락했다. 그나마도 물량이 늘고 가격이 떨어지자 포전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산지 폐기, 인건비·일손부족 문제

계약재배조차 하지 못한 농가의 판로가 더 막막하긴 하지만 산지 폐기 대상자가 되었다고 해도 수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농민들의 말이다.

50년 넘게 농사를 지었지만 배추를 갈아엎는 일은 처음이라는 김광래(대호지) 씨는 산지 폐기 보상을 받아도 종자비와 인건비 등을 제하면 남는 게 없다고 호소했다.

“팔지 못하고 갈아엎는 것도 속상하지만 종자구입비와 인건비 등을 제하고 나면 남는 건커녕 적자를 보게 생겨서 큰일이에요. 산지폐기를 하려면 비닐도 걷어내야 하고 트랙터도 써야 하니까요.”

송악 월곡리에 사는 박성숙 씨는 “씨앗을 심고 물주면서 자식처럼 키웠는데 내 손으로 직접 땅 속에 갈아엎는 건 할 짓이 못된다”며 “폐기처분을 하려고 해도 트랙터를 돌려야 하고 사람을 사서 갈아엎은 배추도 실어 내고 비닐도 치우려면 품삯만도 적지 않게 들어간다”고 말했다.

트랙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농가의 경우에는 트랙터 대여비 부담도 추가된다. 배추를 갈아엎고 나서 비닐을 따로 치우는 데 필요한 일손도 문제다. 품삯이 비싼데다가 요즘 농촌에서 일손 구하기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배추에 비해 수분이 많고 잘 썩지도 않아 내년 농사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농산물 수급불균형과 가격 폭락이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사전 재배량 조사와 계약재배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군내 12개 농협 중 배추를 계약 재배하는 곳은 절반뿐이며 무를 계약재배하는 곳은 송악농협 한 곳 뿐이다. 계약재배 물량 역시 군 재배예상량 7만여 톤 중 약 6천톤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기사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