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따뜻한 단어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칠 때면 아무런 보상도 이유도 없이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다. 내 인생에 가장 큰 행복이자 축복인 가족들과의 추억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내게 선물한다.

첫 번째 사진은 용무치항에서 만난 아내(유미자)와 결혼을 약속하고 찍은 사진이다. 용무치항 부근 해안부대에서 복역 중이던 나는 매일 아침이면 마을에 있는 우물물을 길어 날랐다. 당시에는 수도설비가 잘 되어 있지 않아 부대 내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마을 우물물을 사용해야만 했다. 이 우물은 우연스럽게도 처가댁 내에 위치해 있어 종종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진행 중이던 월남전에 파병될 병사로 차출됐고 아내와 용무치를 뒤로한 채 월남으로 떠나야만 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친 나는 고국에 돌아와 멍텅구리배(실치배) 운영을 하기로 마음먹고 평소 우물물을 길어 나르던 용무치항 아내의 집을 다시 찾았다. 당시에는 아내보다 장모님과 친분을 더 쌓아두고 있던 터라 처가에 머물며 밥도 얻어먹고 멍텅구리배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도비도에서 가두리 우럭양식장과 재덕수산낚시타운을 함께 운영 중에 있다.

두 번째 사진은 가족사진이다. 장모님의 조언과 도움으로 용무치에서 멍텅구리배를 운영하면서 아내와의 혼담이 오고 갔고 결국 결혼해 한 가정을 이뤘다. 큰아들 김정훈(사진 우측), 둘째 김정호(사진 좌측), 막내 딸 김론정(사진 중앙)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성인이 된 두 아들은 필리핀에서 골프연습장 사업을 진행 중이며 막내딸은 대전의 한 백화점에서 의류코너를 운영 중에 있다. 막내딸이 태어나고 면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할 당시 혜정이라는 이름으로 한자를 표기해 서류를 제출했지만 착오가 생겨 론정으로 이름이 바뀌게 됐다.

세 번째 사진은 두 아들의 초청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필리핀으로 여행가서 찍은 사진이다. 용무치에서 처음 만났던 아내는 꽃다운 나이 19세였다. 지금은 약 40년의 세월이 흘러 세월의 흔적이 서로의 모습에 깊게 배어있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에서부터 지금까지 함께 고생하고 행복을 나누며 살아준 아내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세월이 흘러 서로의 모습도 많이 변했지만 그녀는 아직도 내게 19세의 꽃다운 모습으로 함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