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의 목처럼 좁게 생긴 지형

장고항은 3개리로 분구되어 있다. 장고의 목처럼 좁게 생긴 지형이라 해 이름 붙은 장고항은 해안 마을이다. 그중에서도 장고항2리는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장고항과 소박하지만 운치 있는 용무치항이 속한 마을이다. 장고항2리는 4개반으로 이뤄져 있다.

“장고항2리는 당진에서 한진포구와 함께 가장 큰 포구였지. 근래에 들어서면서 해안도로도 생기고 왜목마을이랑 함께 관광지로 조성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진 거지, 예전에는 살기 어려웠던 동네여.”

“그 시절에는 다 그랬지. 물고기는 지금보다 더 많이 났어도 형편은 다들 어려웠어. 40~50년 사이에 마을이 많이 변했지. 장고항에 식당이 들어선 것도 그 무렵이고. 그때는 해안도로도 없었고,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오솔길만 있었지.”

세월이 변하면서 바다만 바라보고 살던 어촌마을에도 농경지가 점차 늘어났다. 50여년 전만해도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올리거나 갯벌에서 조개, 낙지 등을 잡아먹고 살았다. 하지만 요즘은 마을 주민들의 절반가량이 농사를 짓고 일부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횟집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형과 생계 형태가 변화하면서 마을 구성원들도 달라졌다.

“지금은 장고항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는 많이 줄었어. 외지인들이 그만큼 많이 늘었지. 토박이는 마을 주민의 절반도 안 될 거야, 아마.”

장고항의 개항과 실치잡이

언제 장고항이 개항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임진왜란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포구 주변의 바위를 노적가리처럼 쌓아 올려 마치 군량미를 쌓은 듯 보이게 함으로써 수많은 군사가 주둔하고 있는 듯한 위장술로 왜구의 침입을 모면했다는 전설이 있다.

장고항은 조선말 인천 제물포까지 뱃길이 열렸고 똑딱선으로 4시간 가량 달리면 도착할 수 있어 이때부터 포구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일제 말 어란이 이곳에서 나오자 어란공장이 생겨날 정도였고 당시 부산수산에서 일본으로 실어 나른 어란이 일본에서 별미로 각광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본격적인 어항으로 발돋움한 장고항은 그 후 황석어젓이 새로운 어종으로 등장했고 6.25 이전까지 호황을 누렸다.

이후 1970년대 초반 용무지에 멍텅구리배(기계업이 고기를 잡는 배)로 실치를 잡기위해 인근 서산, 대산 등지에서 어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실치, 전어, 대하, 꽃게 등을 잡았다고 한다.

실치가 유명해진 것은 1980년대 초반쯤으로 잡자마자 죽는 실치의 특성상 포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실치회와 뱅어포로 장고항일대가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근래에 접어들면서 수온이 높아지며 바다 생태계가 변해 풍성했던 어종은 비교적 단조로워졌다.

“실치는 예부터 지금까지 잡히지만 다른 어종들은 많이 바뀌었지. 옛날에는 병어, 준치, 민어도 나왔고 꽃게도 지금보다 더 많았어. 지금은 간재미나 우럭, 도다리 정도가 잡히지. 그나마도 예전에 비하면 1/10 밖에 안 돼.”

촛대바위 옆 용천굴의 전설

왜목마을에서 바라본 일출사진은 당진 홍보자료에 빠지지 않는다. 일출 사진 속 붉은 해가 떠오르는 바위산이 바로 장고항2리 노적봉과 촛대바위다.

당진8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노적봉과 촛대바위의 일출은 매년 2월과 10월에 감상할 수 있다. 바다에서 촛대바위 왼쪽 산에는 해식동굴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동굴에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천정이 뚫려 하늘이 보이는 해식동굴은 먼 옛날 용이 승천했던 곳이라 해 용천굴이라 불린다. 또 200여년 전 나라에 큰 정변이 일어 사람들이 참변을 당하거나 피난을 가야했던 때가 있었단다. 헌데 어린아이가 홀로 책을 매고 동굴에서 7년을 공부한 끝에 장원급제해 벼슬길에 올라 재상까지 하였고, 이후 마을 사람들은 이 동굴을 신성한 곳으로 여겨 출입을 금했다는 이야기도 내려오고 있다.

* 당진군지(1997 발행), 실치잡이배재현 안내문 참고.

[편집자주]  농한기에 접어들면서 마을 경로당이 ‘성수기’를 맞았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 지은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여 무료하고 적적한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다. 윷도 놀고, 장기도 둔다. 끼니 때가 되면 밥 당번을 정해 시래기된장국에 점심도 함께한다. 어르신들이 한데 모인 경로당을 찾아 마을마다 전해져 오는 전설부터 수십 년 전 마을의 옛 모습과 생활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옛날을 기억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계신 지금 듣고, 기록해 놓지 않으면 작지만 소중한 마을의 역사가 그대로 묻힐 것이라는 우려가 ‘기억으로 쓰는 마을의 구술사’ 신년기획 ‘경로당을 가다’를 시작하게 했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