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회신평은수교회 담임목사

성숙한 신앙을 위하여

세계에서 신이 가장 많고 신의 이야기가 수두룩한 나라는 아마도 희랍일 것이다. 희랍신화 가운데서도 두드러지게 많이 등장하는 신이 운명의 신이고 보면 희랍인들은 운명론의 사슬에 붙잡혀 사는 민족이 아닌가 싶은데 신화가 만들어내는 유추가 또한 이채롭기 그지 없다.

한 인간의 운명을 물레에서 실로 자아내는 여신 클로트, 그 실로 라케시스는 인간의 운명을 천으로 짜고, 아트로포스 여신은 운명의 실을 큰 가위로 잘라 잔인하게도 한 인간의 죽음을 선고한다고 한다.

희랍인들은 이런 여신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전전긍긍할까?

우리네 또한 높다란 네개의 운명기둥에 묶여 사는데 태어난 ‘연·월·일·시’가 결정해주는 운명의 끈에 목매어져 이 사주의 궤적따라 살아왔다. 사주의 간지가 두자씩이므로 이걸 사주팔자라 하는데 내 인생의 길흉이 어디에 어느때 어떻게 도사리고 있는지를 이 지도(?)에서 살펴나갔다.

지금 수천년의 나이로 늙어온 고령의 이 운명론은 IMF를 어떻게 판독할까? 치매에 걸려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100여년 전에 들어온 기독교는 우리문화를 다치지 아니하면서 이런류의 미신적 행태를 타파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혹은 생활속에 깊이 배어있는 풍수지리 습속과 무속, 미신과 불합리한 관혼상제의 악습도 건전하고 합리적 방향으로 개선해 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고 우려스러운 일은 기독교 신앙속에 틈입한 기복적 운명론이나 변형된 팔자소관의 요소들이다. 오늘날 성행하고 있는 축재, 치병, 강복, 장수, 형통 등이 주제가 된 각종 예배, 기도회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하나님을 잘 믿고 성경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 충실하고 열성적인 교회생활과 사랑을 실천하는 참된 신앙인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이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당연한 코스이다. 정말로 성숙한 신앙인은 주님이 당하신 고난과 그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편하고 좋을 때만의 교인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 죽음의 위험이 닥쳐올 때 믿음을 나타내 보이는 신앙인이 진정한 교인이다. 교인이라고 해서 항상 잘 되는게 아니다.

그러므로 뿌리지 않은 열매를 구하는 기도는 중단해야 한다. 던진 그물없이 생선을 요구하는 맹목을 자제하자. 정말로 아름답고 기념비적 운명은 도우시는 하나님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우리힘으로 일구어내야 한다. 그것은 그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제게 부여된 제몫의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슬그머니 오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