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가을빛이 들녘마다 너울거린다. 고된 여름 가뭄도, 태풍도 이겨내고 드디어 가을이 왔다. 풍년은 아니더라도 수확하는 마음, 풍요롭다. 거두어들인다는 건 하늘로부터 ‘올해도 고생했다’ 위로받는 일. 농사일 고되더라도 이것만큼 정직한 일 있으랴. 땅과 하늘, 비와 바람, 그리고 햇살이 키우는 일이기에 겸허함을 배운다.

“추수하는 이맘때 제일 좋지요” 송산면 동곡리 이승윤, 김철곤 부부

추수가 한창인 송산면 동곡리의 오후, 이승윤(58) 씨의 논에서는 콤바인 소리가 요란했다. 그 사이 아내 김철곤(55) 씨가 새참을 가져왔다. 추석 때 딸이 사온 메론 한 통과 복숭아 몇 알 뿐이지만 일하다 논둑에서 먹는 새참이 제일이다.

“추수하니 좋지유~ 날씨도 좋고!”

지난 여름, 태풍 ‘볼라벤’ 때문에 걱정했는데 다행히 수확량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거라고 했다. 오래된 수로가 골칫거리여서 양수기로 물을 끌어다 쓴 것 말고는 큰 어려움도 없었다.

“이맘때가 일 년 중 제일 좋아요.” 가을 햇살보다 부부의 얼굴이 더 환하다.

“농민이 천대받는 현실, 안타까워” 정미면 대호지 박성만, 정명예 부부

정미면에서 대호지면으로 가는 길가에서 들깨를 털고 있는 박성만(70), 정명예(65) 씨 부부를 만났다.

3년 전부터 깨 수확이 녹록치 않다. 도리깨질을 하고 나면 하얀 깨가 수북했는데 지금은 희끗희끗 하는 정도다.

“바람 맞아서 그래. 몇 해 째 계속 흉년이여.”

박성만 씨는 30년이 넘도록 농민운동을 해왔다. 국민을 먹여 살리는 농민이 갈수록 천대받고 있는 상황을 안타까워 했다.

“껌 값이 100원에서 500~600원, 심지어 1000원까지 오르는 동안 쌀값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지. 이러니 농민들이 살 수가 있겄어?”

“이젠 같이 늙어가는 거지 뭐~” 정미면 천의2리 오계환, 김분예 씨

아흔 다섯의 시어머니와 일흔 한 살의 며느리가 사이좋게 밭일을 한다. 6대 째 정미면 천의2리에 살고 있는 오계환(95) 씨는 열흘 전 아들집에 놀러온 시어머니 김분예(71) 씨와 함께 땅콩을 캐고 있었다.

올해 땅콩 농사는 잘 됐는데 비둘기가 많이 쪼아 먹어서 속상하단다. 며칠 더 있다가 수확하려고 했는데 가만 두자니 몽땅 비둘기 밥이 될 것 같아 조금 일찍 수확에 나섰다.

“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이렇게 같이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오래오래 건강하셔야지. 어머님도, 나도.”

“바람 맞아 수확량 많이 줄었지” 대호지면 마중리 윤영자 씨

대호지면 마중리 콩밭에서 콩을 수확하는 윤영자(73) 할머니를 강아지 한 마리가 졸졸 쫓아다닌다.

너른 밭에서 할머니는 혼자 일하면서도 적적하지 않다고 했다.

“열매가 맺힐 무렵에 태풍이 지나면서 바람을 많이 맞았지. 그래서 수확량이 얼마 안 돼. 팥도 마찬가지여. 요 일대가 다 그래.”

수확량이 적어 걱정을 하면서도 할머니는 모든 게 ‘하늘의 뜻’이란다.

“이 땅이 어딜 가나? 내년에 또 농사 지어 먹어야지. 흉년도, 풍년도 다 하늘의 뜻인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