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2년(인조10) 2월 13일 승정원일기는 면천군수를 파직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군왕 인조앞에서 있었음을 기록한다. 면천 목장에서 키워 올린 흑우(검은 소)가 체구가 작고 말라 국가 제사용으로 사용하기 곤란하다며 해당군수에게 관리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면천군수는 파직된다.
흑우는 조선시대 명물로 인식되어 왕실의 중요 제사에는 흑우를 사용했다. 이것에 착안 제주자치도는 조선실록 숙종때의 기록을 기초로 흑우가 제주도의 특산물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육종사업등에 매진하고 있기도 한다.
승정원일기는 면천외에 당진에도 흑우만을 육성하는 목장이 있었음을 증거한다. 면천 당진에 흑우 목장이 생긴 이유는 조선실록 중종 1516년 11월 20일 기록 때문인듯 하다. 김굉이 전국적으로 흑우 공출이 큰 문제이니 아예 흑우목장을 별도로 설치하면 어떠냐 건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승정원일기 1628년(인조7) 5월 8일 인조앞에 당진현감이 보내온 보고서(案) 한통이 올라온다. 이 보고서를 본 조정호(1572-1647)가 당진과 면천 두 고을이 흑우징발로 고충이 많다며 페지를 건의 한다.
"신이 전국을 돌며 시골 구석 구석을 돌아본바 한마디로 백성들의 삶이 힘듭니다. 또한 원성이 당연히 높습니다. 철마다 조정과 관청에 내는 세금 때문입니다. 세금만 아니라 각종 공물이 더 심합니다."
조정호는 이렇게 말한 후 이번 조정의 제사에 사용할 당진현에서 올라온 흑우가 제사용으로 사용할 만큼 튼실하지 않다고 말한다. 조정호는 당진현의 전생서(典牲署) 분양목장이라 말한다. 전생서는 조선 왕실의 제사를 책임 맡은 관청으로 종5품관을 말한다.
인조는 시골 군현에 흑우목장이 설치된 이유를 묻자 조정호는 연산군때 설치 됐다는 데 자세한 내력은 모른다 얼버무린다.
흑우는 검은 색깔의 소로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귀하게 여기던 명물이다. 흑우가 칡소인지는 필자도 잘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조선 소였던 황우와는 확연히 구별되고 대우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조선왕실은 이런 흑우를 육성하던 목장을 당진과 면천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승정원일기에는 당진, 면천에 대한 무수한 기록을 담고 있다. 원문이 국가 정보통신 아카이브에 모두 공개되고 있어 눈 밝은 사람은 언제든지 찾아 읽을 수 있다. 아직 10프로도 국역이 안된 상태이기는 하다.
이 속에는 당진, 면천에 있던 수군기지창이나 면천 하늘에 나타났던 미확인비행물체 그리고 현감 몰아내기 등 흥미로운 사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승정원일기는 국가적인 보물이지만 지역에게도 보물같은 텍스트의 보고다. 다만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약간 의지를 보태는 노력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