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 사회복지협의체에서 워크샵으로 고창 선운사에 갔다. 도솔암으로 향하는 길은 단풍으로 아름답다. 사진 전문가들이 계곡에서 삼각대를 세워 놓고는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나는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찍었다. 위원들은 열심히 가는데 나는 사진을 찍다가 부지런히 뒤쫓아 갔다. 하나의 나무에 단풍의 색깔이 여러 가지 이다. 햇빛의 양에 따라서 색상이 달라진다.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다. 사람도 단풍처럼 아름다운 존재이다.
고창은 전봉준의 고향이다. 그의 생가를 가고 싶었지만 일정에 없다. 고인돌 박물관에 갔다. 고대인들의 장례문화를 알 수 있는 고인돌이다. 시신을 커다란 돌로 눌러 놨을까? 궁금하다. 승냥이들이 시신을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함 이기도 하겠지만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신앙관과 연관이 있을게다.
사람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의례는 신앙관이 녹아 있다. 하나의 문화가 삶속에 녹아 있다. 그 삶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현대사회의 삶의 자리는 여유가 사라지고 치열한 생존경쟁의 문화가 만들어 지고 있다. 사느냐 죽느냐에 내몰린 사회이다.
삶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행동은 항상 치열 할 수밖에 없다. 그 치열함으로 인간은 진보를 해 왔다. 지금 한국사회는 삶의 문화를 진보 시키려고 한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지 간에 사회는 진보 할 것이다.
미국에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을 했다. 사회의 진보를 거부하는 세력은 결국에 도태를 하고 만다. 한국 사회에 대하여 스스로의 혁신을 주문하고 있는 안철수 후보는 사회의 진보를 일정부분 이루어 냈다. 삶의 문제는 정치적이다. 사회복지가 대세인 지금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여야 할까? 사회복지가 삶의 문화를 창조하려면 치열한 투쟁을 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면서 철탑에 올라가 농성을 하듯이 치열한 투쟁을 해야 할 시점이다.
전봉준이 농민혁명의 깃발을 높이 들고 고창(高敞)의 들판을 가로지르며 함성을 질러 댔다. 고창 이라는 단어의 뜻은 ‘높다’ 라는 뜻이면서 ‘높은 곳에서의 시원함’이라는 뜻이 있다. 답답한 시대의 억압을 타파하고 시원하게 높은 기상을 일으키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기 시작 했다. 우리가 지금 고창으로 초대를 받고 있다. 고창의 들판을 가로지르는 함성이 들려온다.
조선말기 혼란스러운 시대의 진보는 왕이 이루어 내지 못했다. 고종왕은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하면서 황제로 등극을 했지만 일본군의 소총의 위력만큼도 없었다. 왕이 조선을 구원하기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 때에 고창의 들판에서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도들은 함성을 지르면서 조선을 혁신하였다. 역사의 진보를 이루어 냈다. 역사의 진보에는 고통이 따른다. 생명의 진화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생명을 창조했다는 선언은 생명의 고통이 창조의 근원이요 힘 이였음을 알려주는 메시지이다. 생명의 고통을 통한 창조와 진보의 주체는 권력자가 아니라 민중이다. 권력이 총구에서 나온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권력은 민중들에게서 나온다. 아마도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보여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사회의 진보를 이루는 주체는 대통령이 아니다. 국민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대통령에게 다 미룬다. 그리고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대통령을 마구 욕한다. 그리고는 다음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모습이 꼭 신앙인들이 신에게 기도하며 떼를 쓰는 모습과도 같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욕구를 다 들어주어야 한다고 떼를 쓰는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준비한 만큼만 받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고창의 함성이 바람이 되어 점점 한반도를 휘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