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고 눈도 많이 내렸다. 뉴스를 통해 ‘한파 특보’, ‘폭설’, ‘전력 비상’이라는 단어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고 내복에, 목도리에 두터운 털외투로 중무장을 해도 뼛속 깊이 파고드는 한기(寒氣)를 피할 수 없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이름만큼이나 무서운 한파는 서민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했다.
앞으로 겨울은 얼마나 남았을까? 언제쯤이면 추위 때문에 잔뜩 움츠러든 어깨의 힘이 빠지게 될까?
무심코 달력을 보니 아니, 이게 웬일? 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춘(立春)이 벌써 지난주(2월 4일)에 지났고, 이제 월요일(2월 18일)이면 바로 대동강 물도 풀리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새싹이 난다는 우수(雨水)가 아닌가?
아! 봄이었구나. 새봄이 벌써 내 옆에 가까이, 아주 가까이 와 있었구나! 나는 그제야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외투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고 과감히(?) 벗어버릴 수 있었다.
그렇다. 새봄이다. ‘새 것’은 우리에게 늘 신선함을 주고 큰 기대를 불러일으키는데 ‘새봄’ 역시 ‘새’자가 들어간 것 중에 그 기대감이 가장 으뜸이다.
새봄이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마음이 부풀게 된다. 올 봄에는 과연 어떤 좋은 일이 있을까? 올 봄에는 누구를 만나게 되고, 그 사람과 어떤 일들을 함께하게 될까? 특히 새 학년에 진급하는 아이들은 처음 만나게 되는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궁금함으로, 그리고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청춘들은 아름다운 사랑의 만남을 꿈꾸며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필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올 봄에 어떤 은혜를 주실까?” 생각하면서 봄 처녀처럼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새로운 것을 기대하기 전에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지난 것은 버려야 한다. 아직도 지난 겨울에 발목이 잡혀서 새봄으로 가는 발걸음을 가로막는 것들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우리를 유익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복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넘어지게 하고 유혹에 빠뜨리고 죄에 물들게 하는 것들에 미련두지 말아야 한다. 만약 결혼한 남자가 옛 애인을 계속 만난다면 분명 잘못이다. 이미 지나간 사랑은 과감히 버리고, 생각해 봤자 헛된 일인 줄 알고 자기 아내에게 충실해야 하는 것처럼 이전의 악한 죄 된 모습과 생활들은 버려야 한다. 자꾸 과거에 얽매이면 새봄을 맞이하는 의미가 없다.
그리고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다. ‘결심이 사흘을 지나지 못한다’는 뜻으로, 한 번 마음먹은 것만으로 실천이 잘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작심삼일로 그치지 않는 방법이 있다. 삼일에 한 번씩 작심하면 된다. 만약, 그것도 어렵다면 날마다(?) 작심하면 된다. 날마다 새로운 기대로 하루를 시작하면 된다.(이것은 허접한 말장난이 아니라 그만큼 새봄을 맞는 준비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봄이다. 달력의 절기만이 아니라 실제로 기온이 올라 날씨가 빨리 풀렸으면 좋겠다. 이제 곧 경칩이 되면 개구리가 겨울잠을 깨고 기지개를 펴고 나올 텐데 추운 날씨에 깜짝 놀라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디 풀려야 할 것이 그뿐인가? 날씨와 함께 꽁꽁 얼어붙은 경제도 풀리고, 이웃 간의 얽혀있는 인간관계도 풀리고, 우리 마음속의 우울함과 스트레스도 봄 눈 녹듯이 확 풀렸으면 좋겠다.
봄은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되는 계절이요, 바라봄, 즉 소망의 계절이다.
‘봄’(spring)은 ‘봄’(seeing)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