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지난 2005년 4월 본지 560호에 실린 이문영 씨를 수소문 끝에 다시 만났다. 8년 전 머리에 총알이 박힌 줄도 모르고 50여년을 진통제로 살아온 ‘기막힌 세월’이 소개돼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8년 만에 다시 시민기자와 마주한 이 씨는 흘러간 세월만큼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곁을 지켜주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요양원에 살고 있는 이 씨의 그 간 이야기를 들어봤다.

할아버지 때부터 천주교 신자인 이문영 씨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22세에 군인으로 입대해 40일간의 교육 후 M1 소총을 들고 전쟁터인 인천 옹진으로 2차 전투에 참가했다.

“교관이 하는 말이 총알이 ‘씽’ 하고 지나가는 느낌이 있으면 살아있는 것이고, 총알에 맞았다는 느낌이 들어도 씽 소리를 들으면 살아 있는 것이라고 했어요.”

올해 86세인 이 씨는 송악 실버프리 노인 장기 요양기관에 살고 있다. 식사도 잘하고 대화에도 무리가 없어 여전히 건강한 몸처럼 보이지만, 지난 60년을 그래왔듯 여전히 진통제를 달고 산다.

“예전 같지 않다” 고 말하는 이문영 씨는 필자를 만날 때 손에 5단 묵주를 들고 있었다. 요양원에 온 지는 3년째다.

“<당진시대>에 보도가 나간 뒤로 방송국에서도 여러 번 왔었고 실탄을 빼려고 서울 대학병원에도 갔었는데 병원장이 총알을 못 빼내겠다고 하더군요.”

그는 “병원장이 내가 80세가 넘었고 총알을 빼려면 천공(쥐구멍이라 불리는 머리 위에 있는 급소)을 건드려야 하는데 그러면 죽을 수 있다면서 거부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가끔 자신도 모르게 발작이 난다고. “총알이 자꾸 내려앉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발작이 나는 것 같아”

이 씨는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기도로 이겨낸다고 말했다.

보훈청에서 상이용사 4급 판정을 받은 이문영 씨는 “연금으로 150만 원이 나오는데 손자가 신부님이 된다고 해서 50만 원은 내가 쓰고 100만 원은 신부님이 되겠다는 손자의 학비에 보태려고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손자와 함께 손녀 역시 수녀가 되겠다며 이미 서울의 한 수녀원에 올라갔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주일에 묵주기도 200단을 한다. 잠이 오지 않는 시간과 밤낮으로 묵주기도를 바친다고. 묵주를 잡고 있으면 잡생각이 버려진단다.

그는 “이렇게 사는 게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께서 그렇게 불러 주시는 것 같다”며 “내가 죄를 많이 지었지만, 손주만큼은 하느님께 맡기는 기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평면 한정리 16번지에 살고 있었던 이문영 씨는 아내 고순분 할머니와 사별한 지 5년째다. 이문영  씨는 “할머니는 신앙을 열심히 했고 착했지만, 임종할 때 임종경(돌아가실 때 바치는 기도)을 기도해주지 못한 것이 제일 아쉬운 점이다”라고 말했다

침대 옆에는 대 고상(큰 십자가)과 5단 묵주, 소 고상(작은 십자가)이 있었고 학생들이 주었다는 카네이션이 한쪽을 자리하고 있었다.

실버프리 송악 노인 장기요양기관 : 356-1811~2

김석준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