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보다 뿌리가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향우회 활동에 큰 의미를 두지 않던 지난날이었는데 ‘고향’이 얼마나 큰 위로와 안정을 주는지를 깨닫고 활동이 미미했던 우강면민회를 다시 일으켜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과학도를 꿈꿨던 당진소년
침체기에 빠졌었던 ‘재인우강면민회’ 재출범을 주도하고 2년 후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류동열((주)정우플랜트 대표) 전 회장. 우강면 창리 출신인 그는 우강초등학교 40회 졸업생이다. 우강초 졸업과 함께 온양중학교로 진학하면서 고향을 떠난 그는 이후 인천에 정착하고 사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평범한 직장생활은 제가 바라는 바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과학도를 꿈꿨어요. 그런데 어느 새 정신차려보니 사업가가 되어있더군요.” 정우플랜트(주)는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각종 공산품을 제작하는 기계의 도색 및 도장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다. 정우플랜트는 그의 첫 사업체는 아니었다.
“사연을 이야기하자면 무척 길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에는 흔히 말하는 ‘좀 노는’ 학생이었어요. 말썽도 많이 피웠죠. 그 당시 저도 오토바이를 자주 타고 다녔는데 1970년대에 자동차가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동시에 오토바이도 보급이 됐었죠. 그때 효성그룹과 대림그룹을 비롯한 대기업 몇몇이 뛰어들었는데 제가 봤을 때 이 사업을 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겠구나라고 깨달은 거죠. 왜냐하면 오토바이 관련 기술들이 전부 일본의 기술을 가져다 사용했는데 일본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부품을 쓸 수 밖에 없는 거에요. 학교를 마치고 몇 년간 연구해 제가 오토바이 제작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개발하게 된 겁니다. 저는 작은 중소기업을 세워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기 시작했고 곧 독점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크게 성공을 했습니다. 그때가 1981년이니까 오래된 이야기군요.”
30대 초반에 큰 성공을 맛본 그였다. 너무 이른 성공을 시샘해서일까. 머지 않아 크나큰 시련이 찾아왔단다. 당시 기술을 납품받던 대기업에서 그에게 기술과 특허를 넘기라는 요구가 들어온 것이다.
대기업 측에서는 그의 특허 기술이 KS표준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제조라고 문제제기를 했다. 이를 당시 감독기관인 공업진흥청에서 받아들여 생산을 중단시켰다. 공장은 문을 닫았고 그는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었다.
“아직도 생각하면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합니다. 제가 개발한 부품은 KS규격이 필요없는 부품이었거든요. 대기업의 로비가 불러온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저 역시 융통성이 없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IMF 때 문닫은 회사 다시 일으켜
큰 시련을 겪은 그는 몇 년간 보일러 회사에 영업부장으로 입사해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자신을 추스르기 위한 것이었다. 몇 년 후 다시 직장을 나와 현재의 제작기계 도장 및 도색 전문업체인 정우플랜트(주)를 세웠다.
그러나 정우플랜트도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IMF구제금융 여파로 부도를 맞아 간판을 내려야만 했단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그는 몇 년 후 다시 한번 ‘정우플랜트’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기술력과 영업력을 갖춘 CEO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
“정우플랜트가 성장을 거듭하던 시기는 기업들이 국내에 공장을 대거 세우는 대규모 투자시기였어요. 그래서 공장들이 계속 지어지고 저희들의 업무도 계속 늘어났지요. 그러나 지금은 인건비와 각종 제반여건이 기업들로 하여금 해외로 눈을 돌리게 하고 있지요. 우리 사업은 사양기에 접어든 셈이지요. 그래도 저희는 그동안 닦아온 인맥과 기술력으로 꾸준히 실적을 쌓아올리고 있습니다.”
고향이 그리워 시작한 향우회 활동
다시 문을 연 정우플랜트가 자리를 잡을 즈음이 그가 향우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시기였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즈음이었다. 향우회 가입이 2008년이니 다른 회원들에 비해 조금은 늦은 향우회 활동 시작이었다.
“재인충남도민회 활동을 하면서 모임에 참석하면 늘 저는 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면민회, 시민회 회장, 부회장직을 하면서 도민회 활동을 하는 임원들이 많았어요. 제가 우강면민회를 다시 일으켜야겠다고 결심했지요.”
결국 당진시민회 가입 2년만에 재인우강면민회를 재출범시켰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회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참여를 부탁했다.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뜻을 같이 하는 향우회 임원들과 함께했다.
“로타리 활동을 오래 해왔던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모임을 조직하고 이끌어나가는 것을 많이 보고 겪었지요.”
“이젠 사업만큼 중요해진 향우회”
“우강면민회를 재출범하면서 면민회는 이제 제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현 박중근 회장님께서 활발한 활동을 해주고 있고 저는 명예회장으로 현 회장을 뒤에서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느 모임보다 향우회 모임에 나갈 때 가장 마음이 편하고 즐겁습니다.”
“향우회의 가장 큰 목적은 ‘서로 돕는 것’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류 회장은 “어려운 일이 있다면 다 함께 힘을 모아 극복하도록 하는 것이 향우회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여긴다”고 말한다.
즐거운 일은 함께하면 배가 되고 슬픈 일은 반이 된다는 옛말이 있다. 향우회는 즐거운 일보다 슬프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더 큰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제 제 삶에서 제 사업만큼 향우회가 중요합니다. 다른 향우분들도 제 마음과 다르게 않을 겁니다. 당진시민회와 우강면민회가 앞으로도 끝까지 계속됐으면 합니다.”
김기연 시민기자 sainttail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