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이 고향인 요양 보호사 김민자(58) 씨는 당진시 신평면 금천리(새마지)에 살고 있다.

2000년 남편의 사업실패와 간 경화로 당진에 공기가 좋다는 말을 듣고 남편 휴양차 2003년 전입하게 된 것. 그녀는 “지인도, 연고지도 없었던 당진에서의 삶이 당시는 절박했다”고 말했다.

“당진 땅이 저희에게는 여러 가지로 복 받은 곳이에요. 신앙심도 깊어지고 건강도 회복되고 저희가 크게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건강도 악화됐고 경제적으로도 어렵던 시절이었죠.”

김 씨는 “충남당진지역자활센터를 동네 분이 알려주어서 자활을 시작했는데 송영팔 센터장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앞으로도 살아있는 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진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연고지도 없던 시절에 당시 자활센터장님이 어려운 이야기를 듣고 정신적으로나 물심양면으로 많이 배려해 주셨어요. 그때 요양보호사 제도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당시 자활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은 무료로 요양 보호사 교육을 받을 수 있었죠.”

김 씨는 “3개월에 한 번 남편 정기검진을 서울 아산병원으로 다니는데 교통비, 검사비 가 많이 든다”며 “남편이 경제활동은 못하지만, 건강도 회복되고 치유도 돼서 여러 가지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김민자 씨는 남편 정현진(61) 장로와 ‘금천 중앙 감리교회(담임목사 정연위)’에 다니고 있다.

지난날을 회상하던 김민자 씨는 “사업을 크게 했으니까 공주처럼 지냈고 누릴 것을 다 누렸던 것 같다”며 “그러면서 회복이 된다는 생각을 했고, 당시에 좋은 것들을 다른 이들에게 주었는데 지금은 그때 그것들이 필요한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직장생활만 하다가 동업이라는 것을 했는데 실패했지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면 하나님만 바라보고 갈 수 있는 것, 고난을 주신 하나님께 제가 건강해서 남편 뒷바라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주객이 바뀐 일을 시켰다가 일을 하게 된 지금 오히려 신앙이 돈독해 졌다”며 “믿음이 바로 서기 위해서 고난을 주신 데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몸이 여려 보여서 취업도 쉽지 않았던, 지금보다 어렵던 시절 일하러 갔다가 돌아오기 일쑤였던 그였다.

전혀 해보지 않았던 꽈리고추를 따러 갔다가 다른 사람들 두 고랑 딸 때 한 고랑을 따면서 꽈리 고춧대를 부러뜨렸던 일, 횟집에서 일할 때는 회의 육질을 알지 못해 서로 바꾸어서 날라주었다가 냉장고 뒤에서 공주같이 살았던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던 때도 있었다.

“저는 당진이 좋아요, 신앙도 건강도 좋아졌기 때문에 당진에서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제가 머리 커트를 조금 배웠거든요. 3개월에 한 번씩 신흥리, 미류리, 도성리, 금천리, 금곡리 등을 다니면서 할머니들 머리를 깎아 드렸는데 앞으로는 전문적인 봉사를 해 드리고 싶어요.”

김석준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