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6년이 지났지만 마땅히 할 일도, 받아주는 곳도 없어 용일 씨는 하루하루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용일 씨 할머니를 만났다. 우두1동 마을회관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어르신들에게 길을 묻다가 우연히 만난 용일 씨 할머니와 함께 꼬불꼬불 흙길을 따라 가니 용일 씨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 나왔다.
낯선 사람을 보고 경계의 눈초리로 왈왈 짓던 세 마리 개들과는 달리 한적한 시골집에 찾아온 손님이 궁금했던지 용일 씨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용일 씨는 14년 전 그대로였다.
앞서 본지를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된 용일씨(26)는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이다. 용일 씨의 지적 수준은 3~4세 정도. 숫자 10까지 세는 것도 힘들다. 아버지 김한선(59) 씨는 뇌성마비 지체 1급 장애인이고 정신장애 1급인 어머니 김인옥(57) 씨는 병원으로 간 지 어느덧 9년의 시간이 흘렀다. 현재 아흔의 나이를 바라보는 할머니 이기운(85) 씨와 아버지, 그리고 용일 씨가 허름한 시골집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용일 씨는 부자다
“용일 씨, 예전에 왔었는데 기억하세요?”
<당진시대> 기자라는 말에 용일 씨는 준비했다는 듯 장롱 속에서 빛바랜 신문 2부를 주섬주섬 가지고 나왔다. 용일 씨는 귀한 보물처럼 서류 봉투 안에 간직한 것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나에요, 나.”
글씨는 읽지 못하지만 자신의 얼굴이 담긴 낡은 신문은 용일 씨에게 매우 소중해 보였다. 신문 말고도 용일 씨에게는 보물이 많다. 찬양CD와 피아노연주 음반 등은 용일 씨가 음악을 듣는 것이 하루 일과 중 유일한 낙이라는 사실을 말해 줬다. 그리고 해마다 장애인 도민체전 높이뛰기 선수로 참가해 받은 값진 메달 6개도 자랑스럽게 꺼내 놨다. 용일 씨는 얼마 전 개최한 2013 충남 장애인 체육대회도 동메달을 수상했다.
용일 씨는 분주하다
용일 씨는 할머니가 시킨 빨래도 걷고 청소도 해야 하고, 집 지키는 강아지들에게 밥도 줘야 하고, 교회에 가서 설거지물도 버려야 한다. 살림을 거의 도맡아 하다 보니 바쁜 하루를 보내지만, 그래도 심심한 날엔 카세트 안에서 흘러나오는 찬양에 맞추어 기타 치는 시늉을 하면서 논다.
안방 속 자신의 세상과 교회를 제외하고는 외부와의 소통은 여전히 부족했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학교를 다니면서 또래와도 어울렸지만 졸업 후 현재는 이마저도 단절된 상황이다. 집 안에서 TV를 보거나 찬송가를 듣는 것이 전부다.
할머니는 예쁘다
“할머니 얼굴이 좋아요. 예뻐요”라고 말하는 용일씨는 “할머니께 목걸이를 선물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현재 허리 골다공증이 심해 거동이 불편하다. 손과 발이 되어주는 용일 씨가 1박 2일로 체육대회를 가는 날에는 식사 한 끼 해결하는 것도 힘들 정도다. 할머니는 “용일이가 조금만 더 똑똑했으면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며 내내 안타까워했지만 용일 씨를 바라보는 눈빛은 그 누구보다 따뜻했다.
용일 씨는 꿈꾼다
1999년, <당진시대>가 처음 만난 12살의 용일 씨는 자전거 선수를 꿈꿨다. 자전거를 타다가 바퀴가 빠지는 바람에 어금니도 함께 빠져 자전거는 더 이상 타지 않는다. 한 때 과학자가 되고 싶어 뜯었다 고쳤다하던 컴퓨터도 이제는 없다.
14년이 지난 지금은 비행기 조종사를 하고 싶단다. 용일 씨는 꿈만 달라졌을 뿐 12살 그때의 그 모습이 아직도 해맑은 미소 속에 담겨있다. 아직까지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는 용일 씨는 “할머니, 아버지와 함께 미국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용일 씨에게도 봄날이 지나 무더운 여름이 왔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지만 용일씨는 그대로다. 어른 만큼 키가 훌쩍 컸을 뿐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과 눈빛은 14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할머니와 아버지라는 울타리도 세월이 흐르며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용일 씨는 또 다른 여름이 올 때까지 그 울타리 안에서 행복한 꿈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이다.
한수미 인턴기자 d911112@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