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진극장 옆 한복집 아들 이태리 유학 뒤 나무 조각길
그는 염소다. 멋지게 기른 턱수염이 염소를 닮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염소의 느낌이 더 그랬다. 초지에서 혹은 논두렁에서 풀을 뜯는 염소는 얼마나 평화로운가. “메에~” 우는 울음소리는 개나 닭의 소리처럼 요란하지 않다. 연약한 듯 보이지만 조용히 제 길을 가는 염소가 마치 그와 닮았다. (그리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하다!)
어린시절 놀이터 ‘당진극장’
당진극장(현 당진시네마) 뒤 한복집 아들로 태어난 한선현 작가는 나무를 이용해 조각을 하는 조각가다. 한복집 아들이었으니 어린 시절부터 알록달록한 색깔 속에서 자라온 건 당연했다. 게다가 극장 근처에 살았기에 커다란 영화 포스터를 직접 그리는 걸 어깨 너머로 보면서 자랐다.
"자연스럽게 영화를 좋아하게 됐고, 어른들 틈에 끼어 무료로 입장하기도 했어요. 극장을 둘러싼 추억이 많죠. 그야말로 당진극장은 놀이터였어요.”
학교 다닐 때에도 그림을 곧 잘 그렸다. 그는 ‘왜 하늘은 파랗게 그려야 하나’를 고민하며 노랗게 하늘을 칠해 보기도 하면서 엉뚱하지만 나름의 미술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당시 당진에서 구하기 힘든 미술 도구들을 천안까지 가서 사주시기도 했던 아버지는 그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그림 그리는 걸 심하게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반항(?)한 한 작가는 이제 그만의 독특한 작품들로 이름나 있다.
한선현 작가가 나무 조각을 시작한 건 우연에서 비롯됐다. 20대 후반에 이탈리아로 떠난 그는 성당문을 만들고 있던 목조장인 크라우디오 끼야삐니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서툰 언어는 문제될 게 없었다. 한 작가와 크라우디오 할아버지는 서로 마음으로 교감했다. 우연한 만남이 한 작가가 나무 조각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계기가 됐다.
“내 색깔대로 작품 만들 것”
‘Ciao(치아오)!’ 이탈리아어로 ‘안녕’이라는 의미인 이 말은 한 작가의 작품에 염소만큼 자주 등장한다. ‘안녕’이라는 말은 일상적인 인사로 쓰이지만 상대방의 안녕을 빌어주는 말이기도 하고 축복하는 말이기도 해서 그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아이들이 서로 마주보고 ‘안녕!’하고 방긋 웃는 모습이 상상되는 것처럼 그의 작품 속에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마치 동화책을 보고 있는 듯이 그림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밝아진다. 물론 전쟁이나 억압 등 강렬한 메시지를 표현한 작품들도 있지만 결코 어둡거나 비장하지 않다. 어려움도 웃으면서 헤쳐 나가는 작가의 모습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이다.
한선현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야 보는 사람이 즐겁다”며 “동심만이 내 작업의 살길”이라고 말했다.
“나답게, 내 색깔대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게 언제나 제가 바라는 목표에요.”
도시개발과 감성계발 함께 이뤄야
서울과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흡사 목공소 같다. 실제로 그는 인근에 위치한 1만 평 규모의 큰 목재소에도 적을 두고 있다. 그의 작품활동은 실로 노동에 가깝고 그래서 더 진솔한 삶이 담겨 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단단한 나무를 조각하는 이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인지 그의 작품은 나무의 질감처럼 따뜻하다. 그리고 살아 있다.
스물여섯의 어린 나이에 고향인 당진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이후 본인이 작업장으로 사용하던 아미미술관에 종종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 가을, 서울 삼청동에서 열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당진에서 전시회를 연지 20여 년이 지났다. 지금의 당진은 당시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외적인 성장을 거뒀지만 그는 빠른 성장에 가려져 쉽게 놓치게 되는 것들을 아쉬워했다. 전시회를 열든, 도록을 만들든 자신이 당진 출신이라는 걸 언제나 드러낼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이 많아서 더 그랬다.
“문명에는 늘 부작용이 뒤따르게 마련이죠. 도시와 함께 정서와 감성이 함께 성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매력적인 도시가 되려면 아스팔트를 깔아 자동차가 빨리 가는 길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한 거리·공원·광장을 만들어야죠. 옛 정서를 담아내고 사람들의 마음을 되살리는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선현 작가
-1968년 생
-당진초·당진중·호서고·관동대 조소과 졸업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 졸업
-개인전 : 인간(1993)·동물(2000)·인간과 동물(2002)
한선현의 작업실·외다리위의 염소
흰염소의 전쟁. 그리고 평화(2006)
염소의꿈-그리다(2009)
염소의꿈-만들다(2010)·나는 염소다(2011)
<편집자주> 서울을 가려면 차로 5~6시간을 가야했고 인천은 배를 타고 가야 했던 시절, 교육환경이 열악했던 고향을 떠나 타지로 유학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세월이 흘러 이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다른 지역에 정착했지만 언제나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출향인들을 만나 지역에 소개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