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정착위해 열일 제쳐 둔 남편 고마워”
“평소엔 열심히 일하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내는데, 추석처럼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되면 고향에 있는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나요. 두 시누이가 모여서 오순도순 수다 떠는 모습을 보면 저도 제 동생하고 그렇게 얘기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요.”
신평면 금천2리로 시집와 8년 째 살고 있는 이유경(베트남 이름 판티피·31) 씨 가족은 다문화가정 중에서도 잘 정착해 살고 있는 ‘모범가족’으로 꼽힌다. 남편 한성범(42) 씨는 자신 하나만 믿고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에서 생활하는 아내를 위해 그 좋아하던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끊을 정도였다. 결혼한 지 10년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사랑스럽게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변함이 없다.
차례상 한 번 배운 뒤 ‘척척’
사실 처음부터 결혼생활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어려움인 의사소통의 문제는 이 씨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뒤 1년 동안은 거의 바디랭귀지로 생활했단다. 게다가 결혼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편찮으시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문화도 익히지 못했는데 상을 치러야 했다. 몇 달 뒤에 맞은 추석에는 차례상을 차리느라 진땀을 뺐다. 여러 종류의 나물이며, 산적, 전, 탕국, 한과와 과일 준비 등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들 하나하나 사진을 찍고 공책에 적었다. 양념부터 조리까지 모든 과정을 빼놓지 않고 기록하다보니 노트가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찼다.
남편 한성범 씨는 “첫 추석에만 동네사람들과 가족의 도움을 받았을 뿐 그 다음 명절부터는 혼자 척척 해내더라”며 “제가 장남이라 아내의 부담이 컸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맏며느리로서 책임감이 있었죠. 처음에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지, 매 명절마다 언제나 저를 도와주진 못하잖아요.”(이유경 씨)
8번째 한국에서 추석을 맞는 그는 이제 베테랑 주부가 됐다. 차례상에 놓을 음식을 이 씨가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준비하면 남편과 시아버지가 예법에 맞게 상을 차린다.
“어떨 때는 아내가 원래 한국에서 태어나야 할 운명이었는데 신의 실수로 베트남에 잘못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만큼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 같다니까요. 결국 저를 만나 아내의 원래 운명을 되찾은 거죠.”(남편 한상범 씨)
“나도 친정에 갈 수 있었으면”
오랜만에 모든 가족들이 한데 모여서 맛있는 음식과 정을 나누는 명절이 이 씨도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괜히 마음 한 켠이 무겁다. 차례를 지내고 친정으로 가는 동서에게 음식을 싸서 손에 쥐어 보낼 때면 ‘나도 친정에 가서 엄마랑 밥상에 마주 앉아 밥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친정에 모인 시누이들이 알콩달콩 대화를 나누면 고향에 있는 동생이 그리워 우애 깊은 두 자매의 모습이 괜히 샘 날 때도 있다.
“추석 명절엔 모두들 가족과 함께 기쁜 시간을 보내는데, 간혹 나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이렇게 문득 생각 날 때면 괜히 마음이 아파요.”
가족 이야기를 꺼내자 순식간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다 툭 떨어졌다.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은데…”라며 이 씨는 멋쩍은 듯 눈물을 훔쳐냈다. 3년 전 고향을 간 뒤 일이 바빠 한동안 가지 못한 이 씨는 고향과 가족 생각에 눈물을 떨구면서도 “남편 탓이 아니다”라며 “제가 바빠서 못간 거죠. 남편은 고향에 보내주고 싶어 하는데 상황이 안되니까… 남편의 그 마음 다 알아요”라고 외려 남편을 위로하듯 말했다.
통번역사 일하며 이주여성 도와
정착 초기, 혼자서 한글공부를 시작한 이 씨가 한국에 온지 약 1년 뒤에 당진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센터장 장순미, 이하 다문화센터)가 문을 열었다. 센터에서 본격적으로 한글과 한국문화 등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이 씨는 한국생활을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이 씨는 “다문화센터는 마치 친정 같은 곳”이라며 “이 곳을 통해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며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다문화센터에서 베트남어 통번역사를 하면서 초기입국자 등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남편보다 더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지금에야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에 대해 사회적 인식이 상당부분 개선되긴 했지만, 꾸준히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어 그만큼 풀어 나가야할 숙제도 많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으며 부부싸움이 자주 일어나기도 하고, 심할 경우 남편과 시가족의 폭언·폭력 등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유경 씨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한국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때가 떠오른다”면서 “힘이 닿는 한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요. 처음엔 누구나 힘들 수 있어요. 하지만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을 찾고, 노력하다보면 행복을 되찾을 수 있죠. 제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