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뙤약볕·폭우 속에서도 ‘우리는 걷는다’
국토순례 오리엔테이션에 처음 참석했던 작년 여름, 사무국장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국토순례를 수년년째 연이어 참가하는 학생들도 있단다.”
그 때는 ‘이런 고생을 왜 또 하지? 한 번으로 족하지 않나?’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3일까지 4박 5일간의 ‘당진시 청소년 나라사랑국토순례’를 올해도 다녀왔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국토순례다. 우리가 4박 5일 동안 걸어가야 할 거리는 약 105km. 합덕청소년문화의집을 출발해서 신리성지, 구만초를 거쳐 가야산을 넘고 해미읍성을 지나 홍성 광성초에서 험난한 서산 AB방조제를 건너서 태안의 청포대해수욕장까지 걷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실제로 걷다보면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다. 뙤약볕에 105km를 걷고, 모든 식사를 우리 손으로 직접 해서 먹어야 하며, 뜨겁게 달구어진 주차장 바닥에 우리가 잘 텐트도 직접 쳐야 한다. 물론 가뭄 속 단비 같은 시간들도 있다.
참가 신청을 하기 전에는 많이 망설였다. ‘작년에 그렇게 힘들었는데, 그 고생을 또다시 사서 할 필요가 있을까? 이번 방학은 편하게 에어컨 바람을 쐬며 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국토순례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4박 5일간 그 뒤에 얻게 될 소중한 것들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분명 힘들긴 하겠지만,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참을성이 많은 사람인지 확인하고도 싶었다.
땀범벅에 몸은 천근만근
7월 30일, 드디어 대장정에 오르기 위해 합덕청소년문화의집에 모였다. 설레기도 하고 동시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작년의 힘들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가야산을 오를 때 가슴 높이까지의 바위를 오르느라 네 발로 기다시피 했던 일이 떠오르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걷기 시작한 지 세 시간쯤 지나자, 우리는 급속도로 말이 없어졌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죽을 맛이었다.
태양은 뜨겁고 피부는 열에 화끈거렸다. 선크림을 바르려고 해도 비 오듯 흐르는 땀 때문에 도저히 아무것도 바를 수가 없었다. 구만초등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자마자, 갑자기 하늘이 어둑해지더니 비가 쏟아졌다. 먹구름은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었고, 빗줄기는 몸의 열기를 식혀 주었다. 햇빛이 없으니 살 만 했다. 비록 옷이 홀딱 젖어서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무더위 속에서 걷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그렇게 비에게 고마움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사막에서 한 줄기 오아시스라도 만난 듯한 기분으로 하늘과 빗방울에게 감사하며 걸었다.
힘겨웠던 첫날의 국토순례를 무사히 마치고 텐트 안에서 단잠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같은 조 언니가 깨웠다. 바람이 불어서 우리 텐트가 주저앉았다는 것이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그냥 자고 있었다. 참 별 일도 다 있다 싶었다. 새벽 두 시에 잠이 덜 깬 채로 다섯 명이서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무너진 텐트를 다시 세웠다. 간신히 텐트를 세워놓고 눕자마자, 이젠 비가 내리고 천둥번개까지 쳤다. 집에 있었다면 아무런 걱정없이 한참 꿈속을 여행하고 있었을 텐데.
둘째 날과 셋째 날은 꽤 괜찮았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땅만 보고 걷다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자연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푸른 산과 높은 하늘, 끝없이 넓게 펼쳐진 녹색 논밭은 더위와 힘듦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자연은 어디 먼 곳에 있는 줄로만 알았다. 이렇게 가까이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조차 못했었다.
고통조차 아름다운 청춘
넷째 날이 가장 힘들었다. 김좌진 장군 생가에서 태안 청포대해수욕장까지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대충 씻은 다음, 해도 뜨기 전인 다섯시 쯤에 출발했다. 뜨거운 한낮을 피해서 조금이라도 더 선선한 시간에 서산 AB방조제를 건너야했다. 이 길은 끝도 없이 쭉 뻗은 직선도로인데다 그늘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공포의 구간이다. 걸어도, 걸어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첫째 날처럼 비라도 내리면 덥지는 않으련만, 야속하게도 태양만 쨍쨍 내리쬐었다.
나와 친구들은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넷이 일렬로 서서 무반주로 노래하는 모습은 다른 사람이 보기엔 굉장히 우스웠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정말 절박한 심정이었다. 노래라도 부르지 않으면, 그 땡볕에서 버텨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오죽했으면 인솔자 선생님들도 무전기를 이용해 노래를 들으며 걸었을까?
한참을 노래 부르며 걷다 지쳐서 아무 말 없이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도대체 너는 여기에 왜 또 온 거야?”
도무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나도 그때 속으로 무척 후회하고 있었다.
‘내가 이 고생을 하려고 또 신청하다니….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내가 정말 미쳤지.’
이젠 한 발짝을 내딛는 것조차도 고통인 시간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청포대해수욕장이 보였다. 그때의 기분이란! 해수욕장에 도착해 바다에 들어가 신나게 놀고 저녁을 먹는데, 이제 내일이면 이 국토순례도 끝이라는 생각에 굉장히 아쉬웠다. 이곳에 와서 만나게 된 다른 조원들과도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벌써 헤어지다니. 4박 5일이 너무 짧은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지막 날은 버스를 타고 당진으로 돌아왔다. 당진청소년문화의집에서 4박 5일간의 활동을 모은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의 우리들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기운없이 휘적휘적 걷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진들을 보며 웃었다. 이젠 웃으면서 그 지옥(?) 같았던 날들을 회상할 수 있다는 것이 묘하게 느껴졌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어
사무국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 뛰어다니며 소리치던 인솔자 선생님들도 감사했고, 내가 힘들어 할 때마다 챙겨주고 도와줬던 친구들이 고마웠다. 4박 5일 동안 크게 다치지 않고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음을 감사했고, 답장 하나 없는 딸에게 매일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던 엄마에게도 감사했다. 인솔 선생님으로 같이 참가한 아빠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지. 우리 아빠는 벌써 네 번째 참가했다. 해단식이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친구가 씩 웃으며 말했다.
“네가 여기 왜 다시 왔는지 이제 알겠다.” 국토순례 중 나에게 “왜 또 왔느냐”고 물었던 친구였다. 아마도 이런 것이 국토순례의 매력 아닐까? 그 힘든 과정을 뻔히 알면서도 또다시 신청하는 이유를 절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럴 것이다. 설사 말로 표현한다 하더라도,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이 뿌듯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직접 가보고 경험한 뒤에야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국토순례를 무사히 마치고 나니 이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얼마든지 극복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것이 가장 큰 수확이고, 내가 두 번씩이나 신청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아직도 그때 일들이 간간이 떠오른다. 밤에 텐트에 누워 자기 전 친구와 작은 목소리로 웃으며 이야기하던 일, 발바닥에 잡힌 물집을 덜덜 떨면서 터뜨릴 때 옆에서 친구가 내 손을 꼭 잡아주던 일, 지옥 같았던 행군을 무사히 마치고 시원한 바닷물로 풍덩 뛰어들었던 일… 이 모든 것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