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들녘을 나가보면 하늘의 뜨거운 태양이 낮게 내려와 있다.
마지막 결실을 위한 자기의 가장 뜨겁고, 열렬한 사랑을 마지막까지 보내주는 모습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 같다. 한 낮에 끝없이 펼쳐진 들녘을 거닐면 조용하고 평화가 넘친다. 생활에 찌든 사람들의 마음에, 풍요로운 모습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고 회복되는 치료의 공간이다. 그 평화로움 속에는 내밀한 자연의 온갖 비밀과 숨결이 숨어 있어, 끝없이 펼쳐진 들판은 우리를 부르고 우리에게 대화를 걸어온다.
나날이 무거워진 벼이삭들은 고개를 숙이고, 황금으로 변해가는 들녘은 우리가 봄에 심고, 여름에 힘들게 가꿔 온 삶의 공간이지만, 가을날에 보는 들녘은 우리들 인생과 같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은 왜일까. 언제나 바쁘게만 돌아가고 잠시도 자신의 마음을 자연과 일치시키지 못하는 일상생활, 단지 자연은 휴식처이고 그 속에서 즐기고, 이용해 먹고자하는 마음만이 넘쳐 날 뿐 자연에 대한 감사와 겸허한 마음은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본다.
요즘 우리사회에는 특히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법을 알고 법으로 국민을 다스린다는 사람들, 그들에게 자연은 있는가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여기며 거기에 권력과 명예를 주어지면, 윤리와 도덕조차도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재단하려고 하는 교만에 빠지는 자들을 보자니 법 없이도 살려고 하는 일반 국민들의 마음은 헷갈리고 씁쓸하기만 하다.
지식,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도 되는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중국고사의 지록위마(指鹿爲馬)처럼,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우기며 “거짓말도 백번하면 진실이 된다”는 히틀러의 선전가인 괴벨스의 말처럼 뻔한 사실을 백주 대낮에 뒤집어 사회를 뿌리조차 흔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우리사회는 진실이 실종된 이러한 일을 계속 봐야 하는가? 그들의 마음속엔 진실의 작은 불씨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 자들이 검찰 수장이 되고, 국민에게 봉사하고자 한다면 국민들을 과연 무엇을 배우겠으며, 앞으로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아무리 높은 법의 지식이라도 진실과 대체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진실은 이 사회를 가장 밑바닥에서 떠받치고 있는 큰 힘이다. 그러한 진실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머리가 무거울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을 보고, 우리 조상들이 자연을 보고 배운 겸손의 지혜였던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선진국일수록 국민들은 공직자의 높은 윤리의식과 도덕의 잣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이것은 조상들의 유교적인 덕목과 일치한다. 벼슬에 나가기 위해서는 수신(修身)을 해야 되고, 치가(治家)를 한 다음에 치국(治國)을 해야 한다는 대학(大學)의 기본적인 가르침이었다.
설사 잘못이 있더라도, 진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반성하고 떳떳하게 물러났지 진실은 왜곡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풍성하고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튼실하게 여문 벼이삭의 고개 숙인 마음을 가슴에 담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