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송악읍 가학리의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두 명이 사망했다.
▲ 지난 18일 송악읍 가학리의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두 명이 사망했다.

고요함이 무겁게 내려앉은 지난 18일 새벽 1시. 송악읍 가학리의 한 집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순식간에 붙은 불 속에 두 사람의 목숨도 함께 타들어 갔다. 집 안에는 김 모(51) 씨와 그의 둘째 아들(31)이 있었다.

1998년, 둘째 아들이 6살 무렵에 교통사고를 당한 뒤 반신불수의 상태로 그렇게 25년을 살았다. 말 한마디 하지 못했고 대소변도 혼자 가릴 수 없었다. 침상에 누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부모는 자신들의 탓인 것 마냥 죄책감 속에 살아야 했다.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아들 곁에 있어주는 것뿐이었다.

화재가 발생했던 그날도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어머니는 큰아들네에 가 있어 집을 비운 상태였다.

18일 1시30분께, 인근을 지나가던 주민이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고 급히 119에 신고를 했다. 소방관이 출동했을 땐 이미 집은 물론이고 두 사람의 목숨까지도 불길 속에 까맣게 타들어 간 상태였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는 화재현장을 보며 통곡했다. 그는 연신 남편과 아들의 이름을 불러댔다.

중흥경찰서에 따르면 “아버지가 방 안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화재가 발생한 집 주변의 차에서 한 장의 메모가 발견됐다.

“아들아, 사랑한다. (큰)며느리야, 미안하다.”

짧은 두 줄 속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아버지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지인들은 25년 간 아들을 병수발 하면서 김 씨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갖고 있던 땅을 팔아 아들 치료비와 생활비에 보탰고 17년 동안 가스배달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김 씨의 직장 상사는 그에 대해 “성실하고 착실한 직원이었다”며 “평소에 말이 많지 않던 사람이라 아들 때문에 힘들어 하긴 했지만 크게 내색해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가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도 직장에서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고 했다.

장애인 아들을 둔 한 가장이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아들과 함께 생을 포기했다. 그날 새벽, 누워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집 안 곳곳에 휘발유를 뿌리던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