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힘> 함민복 시인의 시집 제목이다.

2013년 마지막 달력 한 장에도 하루하루 빼곡하게 적혀있는 일정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 책장에서 그 책을 끄집어냈다. 그런데 차례를 아무리 뒤져도 찾는 시가 없다. 다시 보아도 없다. 잠시 숨을 고르고 본문을 뒤적이다 한참 뒤에서야 찾아냈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

말랑말랑한 힘

시 한 편을 읽고 비로소 이 시의 제목은 ‘뻘’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동시에 제목보다는 본문이 주는 느낌이 얼마나 강한 것이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뭔가 느낌은 있는데 그게 쉽게 찾아지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떤 사실이 있는데 삐뚜름하게 다가올 때, 갸우뚱 하면서도 그게 아니라고 말하기 힘든 때가 있다.

국정원 사건이 ‘부정선거’인지 ‘대선불복’인지 아리송하게 하고, 시국미사가 ‘애국’인지 ‘종북’인지 댓글 달기 경쟁을 하게 한다. 특정 사업장에서 한 달에 한 명 꼴로 사람의 숨통이 끊어지고 있는데 별 일 아닌 양 살아가라 한다. 답답하다.

‘말랑말랑한’으로 시작하는 그 시의 느낌을 본문에서 찾아야하는데 화려하게 포장돼 노출된 표지 제목만 기억하고 차례에 없다고 이상해하는 꼴이다. 이럴 때, 잠깐 쉼표를 찍어 숨을 고르고 본문을 읽자.

아침에 일터로 나가고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고, 자고 일어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자. 제목과 차례에서 가져올 수 없는 느낌을 본문에서 흠뻑 받아들이자. 본문이 본질을 말한다. 아무리 바빠도 쉽게 보여지는 겉표지와 차례 검색만으로 살아가기엔 뭔가 찜찜하지 않은가?

본문 속에는 ‘삽교호’를 이대로 두면 ‘시화호’처럼 될 것이라는 사실이 담겨있다. 본문은 ‘밀양사람들’과 ‘신평사람들’이 왜 닮아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본문 속에는 말랑말랑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랑말랑한 흙이 되자. 단단한 부조리의 돌덩이가 날아와도 철퍽하고 받아내는 말랑말랑한 흙이 되자. 거대한 억지의 바위덩어리가 날아와도 철푸덕하고 받아내는 말랑말랑한 흙이 되자.

끝도 없이 펼쳐진 말랑말랑한 흙이 되어 지도자의 발을 잡아주고, 2014년 당진이 나아가는 길을 잡아주면 좋겠다. 그러면 참 좋겠다.